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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약 슈퍼판매 논의 앞으로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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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약사로 구성된 위원회 구성…활명수 가능, 진통제는 힘들 듯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보건복지부가 일반약 슈퍼판매 논의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중앙약심)'에 일임했다. 이를 '슈퍼판매 무산'으로 바라보는 분석은 중앙약심이 다루게 될 논의의 범위가 워낙 넓은 데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라 합의도출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을 두고 나오는 목소리다.

◆중앙약심 '싸움터' 될 공산 커
이번 논의를 주도할 기구는 중앙약심의 약사제도분과위원회 산하 의약품분류소분과위원회다. 의료계 4인, 약계 4인, 시민단체 등 중립인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중앙약심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전문가 자문기구로, 여기서 결정되는 내용은 '자문 형태'로 식약청에 전달된다. 식약청은 중앙약심의 결정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대개 수용한다.

중앙약심이 논의를 시작할 사안은 '의약품 재분류'라는 매우 광범위한 주제다. 현행 의약품 분류체계는 2000년 의약분업 때 만들어진 것인데, 10년이 넘게 흐르며 일부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의약품에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ETC)과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 등 2종류와, 의약품은 아니지만 인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공산품과 별개로 관리하는 붕대, 소독약 등 '의약외(外)품'이 있다.

앞으로 중앙약심은 ①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해야 할 품목 ②일반의약품 중 의약외품으로 보내야 할 품목 ③전문약, 일반약 2분류 체계에 '약국외 판매약(속칭 자유판매약)'을 추가해 3분류로 만들 필요성 및 해당 품목 ④의약외품 제도 폐지의 필요성 등을 논의하고, 합의까지 도출하게 된다.

이 중 ①번은 일반약 슈퍼판매와 크게 관련 없는 사안이지만, 이를 포함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일반약 슈퍼판매 논의가 사회적으로 크게 제기된 만큼, 이참에 의약분업 이후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의약품재분류 작업을 근본적으로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약사'에게 반대급부를 주기 위함이다. ②, ③, ④번은 모두 일정부분 약국의 매출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즉 ①번 논의를 배제할 경우 약사들이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의약품 재분류는 반드시 중앙약심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데, 약사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중앙약심은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①번 논의는 일반약에서 전문약으로의 전환보다는 그 반대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어서, 의사들이 강력 반대하고 있다.

예컨대 약사들은 '잔탁'과 같은 간단한 위장약을 일반약으로 내려보내자고 주장하는데, 이를 허용하면 약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범위를 넓혀주는 꼴이 된다.

즉 의사들이 처방약 중 일부를 약사에게 떼어주지 않는다면 약사들 역시 일반약이 의약외품으로 바뀌는 것을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므로 사실상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자유판매약' 신설 가능할까

①번의 합의 가능성을 감안하지 않을 때, 일반의약품 중 의약외품으로 분류가 가능한 것은 약 20여가지가 거론된다.

중추신경에 작용하지 않는 비교적 간단한 약인데 활명수와 같은 드링크류 소화정장제, 파스류 중 일부 성분, 알약 형태의 소화제 등이다. 인체에 매우 약하게 작용하므로 '약'이라 분류하지 말고 '의약외품'에 넣자는 것이다.

이는 약사들이 비교적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분야다. 일단 약사법의 대전제인 '약은 약사만이 팔 수 있다'는 규정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재 의약외품은 약국이든 슈퍼든 어디서나 자유롭게 팔 수 있다.

반면 슈퍼판매 논의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진통제나 감기약 등은 의약외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이런 약들을 현실적으로 '약이 아니다'라고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통제를 슈퍼에서 팔 수 있게 하려면 이런 약을 분류할 또다른 분류시스템이 필요하다. 복지부는 '약국외 판매약(소위 자유판매약)'이란 분류법을 새로 만들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즉 약의 종류를 전문약, 일반약 2분류에서 전문약, 일반약, 자유판매약 등 3분류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일반약 슈퍼판매를 이미 시행하는 유럽 여러 나라나 일본이 채택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자유판매약의 도입은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부터 난항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자유판매약도 '약의 한 종류'이므로 이런 약을 슈퍼에서 판다는 것은 약사의 약 독점권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약사법을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 문제도 수반한다. '약은 약사만이 팔 수 있다'는 정의에서부터 자유판매약의 범위, 판매가능 장소, 판매주체 등을 약사법에 모두 담는 작업이 필요하다.

약사법 개정은 국회 통과가 필요해, 복지부나 중앙약심의 판단과는 별개의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복지부가 선택한 것과 회피한 것

복지부는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의약품 재분류'라는 거대한 논의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나름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손건익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를 '정공법'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역으로 복지부는 합의가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중앙약심에 모든 결정을 맡김으로써 논란을 피해가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복지부는 3일 '의약품 재분류 논의'를 발표하기 전에 전문가 회의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기회가 많았지만, 약사회와의 '합의'에만 집착하며 시간을 보냈다.

즉 복지부가 일반약 중 일부라도 슈퍼판매를 허용할 의지가 있었다면, 3일 발표 내용에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일반약의 목록'을 정하고 이를 담은 의약외품 고시 개정안을 들고 나왔어야 했다.

또 진통제 등은 현실적으로 의약외품으로 분류하기 어려우니 '자유판매약' 제도를 신설해 그 안에 넣을 것이며, 해당 품목은 무엇 무엇이라는 구체적 약사법 개정안도 마련했어야 했다.

이 후 의약외품 재분류는 고시개정으로 마무리 짓고, 약사법 개정안은 국회로 공을 넘기는 역할이 복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나 개정 방향을 결정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중앙약심에 떠넘긴 것은 '단 하나의 약도 약국에서 나갈 수 없다'는 약사회의 주장을 최소한 복지부의 손으로는 거스를 의사가 없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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