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수많은 일자리를 알아본 끝에 결국 밤무대에 나갔다. 기타 실력만큼은 자신이 있던 터였다. 4개월 정도 전국의 나이트클럽을 돌며 공연했다.
처음은 괜찮았다. 밴드마스터가 끼니를 챙겨줬고, 월급도 100만 원이 나왔다. 그 당시 이선정에게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처음으로 힘들고 괴롭게 일하지 않았는데도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모아둔 돈으로 장사도 해봤지만 밑천이 너무 없어 금방 탕진하고 말았다. 결국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출한 지 3년 만이었고, 부모님과 연락이 끊어진 지도 오래였다. 집 주소를 몰라 파출소에 직접 신고를 해 겨우 찾아갔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기댈 곳은 결국 가족뿐이었다.
그동안 집에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 있었다. 가난은 옛말이었다. 어느덧 10억이 넘는 좋은 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소위 '대박'을 쳤다. 기능성 치약이란 게 대한민국에 없던 시절이었다. 청계천 시장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렇게 이선정 가족은 6개월도 안 돼 재기에 성공했고, 큰돈을 벌었다.
귀가와 동시에 이선정은 부모님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월급 150만 원을 받고 치약 유통업을 도왔다. 음악도 그만두었고 학교도 다시 다녔다. 여전히 부모님과 사이는 서먹했지만, 외형적으로나마 가족과 화해를 한 셈이다. 그렇게 일 년 남짓 일하며 그는 천만 원을 모았다. 인생 역전의 씨앗이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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