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영어교재 대명사 이찬승 대표 "빈곤아동 교육에 마지막 승부"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능률교육'을 30년간 이끌어온 이찬승 대표답게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꺼내든 건 영어 원서였다. 그는 'Teaching with poverty in mind'라는 제목의 책을 펼치며 "가난이 아이들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학교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보여준다"며 최근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능률교육의 대표 자리를 물려준 뒤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꾸린 이찬승 대표가 새롭게 개척하기 시작한 영역은 바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다양한 감정에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 감각은 종종 피아노 건반에 비유되곤 하지요"라고 운을 뗀 이 대표는 "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피아노 건반이 녹슬어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슬픈 일, 기쁜 일, 신나는 일, 재밌는 일 등에 반응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 속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피아노도 연습을 많이 할수록 다양한 곡들을 연주할 수 있듯, 마음 속 피아노도 많이 두드려야 제 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다양한 자극을 받지 못해 마음 속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지 못한다. '자고 싶다, 먹고 싶다, 화가 난다'와 같이 원초적인 감정에만 반응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피아노 건반은 쉽게 녹슬어 버리기 십상이다.
이찬승 대표는 "아이들은 주위 환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는데, 특히 태어나서부터 3살이 되기까지 부모로부터 받아야할 사랑과 관심을 적절히 받지 못하면 피아노 건반이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부유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경우가 60%를 넘는 반면, 가난한 집 부모들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며 "한국의 가난한 집 부모는 아이에게 책 한권 읽어줄 시간도 없을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결국 유아기에 부모로부터 감성적ㆍ지적 자극을 전혀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적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가난은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뇌에 영향을 미치고, 아이들은 학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며 "가난한 아이들을 다시 학습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밝히는 게 내가 남은 여생을 걸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순간 눈물이 글썽였다. 창문 너머로 먼발치를 바라다보더니 파일 하나를 들고 온다. 나라님도 해결 못한다는 가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손에는 소외된 지역의 학교를 살리겠다고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교사들의 명단이 들려있었다. 이들과 함께 빈곤층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을 살리겠다고 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던 그는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란 이름이 이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사재를 털어 운영 중인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사무실에는 가난한 아이들의 녹슬음을 닦아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이 따로 있다. 학습부진아의 학습 결손을 메워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올해 하반기부터 지역아동센터 가운데 특별히 선정한 시범센터에 공급할 계획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계발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빈곤지역의 학교와 빈곤아동을 위한 공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 1단계의 목표다. 이러한 변화가 인정받으면 2단계로 정부나 지역자지단체 차원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이찬승 대표는 "실제로 아이들의 변화를 가장 갈망하는 사람은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이라며 "그들에게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열악한 환경의 지역아동센터를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로 구성되는 공부방 교사들의 체계적인 교육과 연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빈곤층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빈곤층 아동들을 위해 계발한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활동을 통해서 빈곤층 아동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교육에 관한 정부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육문제는 정부의 교육정책과 학교현장, 그리고 빈곤층 아동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맞물려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의 영어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교육 시스템은 20세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빠르게 21세기 사회에 걸맞는 학교 시스템으로 개편을 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교육개혁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다시 말해 과거 20세기 산업시대를 위해 만들어진 현재의 학교 시스템과 교육과정은 21세기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비평적 사고능력,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협동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선 '교육이 무엇이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찬승 대표는 "세계적인 교육학회에서 발표되는 연구나 논문 중에서 한국의 교육문제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선정해 정책 입안자들과 공유하겠다"며 대한민국의 교육혁신을 위해서 싱크탱크 역할을 맡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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