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파도치는 별빛 플래시 그 섬, 외롭지 않네
삼척 월천리 솔섬-사진작가들의 프레임 속에서 살아난 솔섬의 秘境
강원도 삼척 남쪽 끝자락에 솔섬이 있다.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솔섬은 2007년 한 외국인 사진가의 흑백사진 한 장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나무숲은 사진가들 덕분에 살아남아 지금도 신비로운 공간의 미학을 선사하고 있다
큰 고니떼가 거울 같은 수면에서 한가롭게 유영을 즐긴다.
어느새 빛이 사라지고 푸른빛이 영롱해지자 물위의 작은 먹선들이 하나둘 모여 번지기 시작한다.
미인의 눈썹을 닮은 소나무숲이 데칼코마니한 것처럼 물과 하나가 되는 순간 세상의 푸른빛은 모두 다 모여든다.
그리고 하늘에서 별비가 쏟아진다.
죽다 살아난 섬이 하나 있다.
강원도 삼척시 남쪽 끝자락인 원덕읍 월천리 '솔섬'이다.
그 섬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때는 지난 2007년. 세계적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가 흑백사진 한 장을 공개한 후였다.
그가 찍은 사진의 솔섬은 바다가 숨을 삭이던 푸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신비로운 느낌의 그 사진에 대한민국의 사진가들이 깜짝 놀랐다.
카메라 들고 다니는 웬만한 사람들 발길이 솔섬으로 향했다.
찾는 이 없어 쓸쓸하던 월천리 바닷가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솔섬이 유명해진 그 해.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가 호산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원덕읍 일대에 LNG(액화천연가스) 저장기지를 건설하기로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소나무 숲이 멋스런 그 섬이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당시 월천1리 이장이었던 김종오씨가 그 섬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
솔섬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진가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사진가들은 곧 사라질지 모를 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별빛이 흐르는 아름다운 숲, 달빛이 고즈넉한 섬, 불타는 하늘을 품은 섬 등 온갖 찬사가 인터넷을 달구기 시작했다.
결국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는 그 섬이 훼손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저장기지를 건설키로 했다.
죽을 뻔했던 솔섬이 사진가들에 의해 되살아난 셈이다.
그 한 장의 사진에 이끌려 동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을 향해 내려가니 호산항이다.
항구에서 1km를 걸어 바다로 갔다.
동해 특유의 희고 너른 백사장 앞에서 겨울 파도가 포효한다. 그 앞에 위풍당당한 솔숲이 있다. 그게 솔섬이다.
사실 솔섬의 풍경은 기대만큼 화려하지도 신비롭지도 않다.
오히려 낮에 그 섬을 대하면 너무 평범해 실망할게 뻔하다.
하지만 일몰부터 일출까지 보는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연출하는 섬의 화려한 변신은 가슴을 뛰게 한다.
특히 망망대해 수평선 위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드넓은 하늘과 수면을 배경으로 자리한 그 섬의 풍경은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어 더욱 경이롭다.
하지만 솔섬은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다.
솔섬 주변은 LNG 생산기지 건설로 어수선하다.
솔섬에 가까이 다가가자 벌써 육지와 섬을 연결하기 위한 공사를 해 놓고 있었다.
솔섬에서 만난 한 사진가가 말한다. "이곳은 오랜세월 동해의 일출 사진 메카입니다. 주변 하늘과 땅, 바다가 망쳐지면 솔섬을 솔섬답게 하는 여백이 사라지는 것이죠."
솔섬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가 지거나 뜬 직후 바람이 멈출때다.
그러면 소나무 숲의 반영이 시작된다.
드디어 짙은 어둠이 그 섬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거울 같은 수면위로 솔섬이 수줍은 속살을 드러낸다.
케나는 이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그 섬을 솔섬(Finetree Island)이라고 기록했다.
해가 지니 별이 떠 올랐다.
낮에는 백사장 하나였는데 이제 거기에 우주가 있고 별들이 움직인다.
한국관광공사가 우리 땅에서 드문 비경(秘境)이라고 인정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사실 그 섬은 섬이 아니라 1000여 평 남짓한 모래톱이다.
덕풍계곡과 동활계곡이 만나 가곡천으로 이름을 바꾼 후 동해로 흘러들기 직전. 유속이 느려지면서 고운 진흙 등이 퇴적해 섬을 만든 것이다.
해당화가 아름다운 그 섬에서 호산리와 월천리 사람들은 수박 등 농작물을 재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섬은 평범한 모래톱이였다.
그런데 30여 년 전 상류에서 떠내려 온 소나무와 이태리포플러 씨앗이 섬에 둥지를 틀었다.
300여 그루의 소나무는 섬 중앙에서 수십 그루의 이태리포플러는 섬 가장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가 그 섬을 휩쓸고 지나갔다.
폭 100m에 길이가 200m쯤 되던 모래톱은 순식간에 절반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태리포플러는 바다로 떠내려가고 소나무만 남았다.
그렇게 소나무는 뿌리를 박고 살아 그 자리에 서서 밤이면 달과 별과 새들에게 둥지를 내어주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가들이 살린 솔섬은 오늘도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 전, 기억 속 신비로운 모습을 남기고자 카메라 프레임속에 담기고 또 담기고 있다.
삼척=글.사진=조용준 기자 asiae@
◇여행메모
▲가는길=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까지 가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나들목에서 나간다. 7번 국도를 따라 울진방향으로 내려가면 삼척 끄트머리에 원덕읍이 나온다. 네비게이션검색 땐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39번지'를 입력하면 속섬까지 간다.
▲볼거리=바다와 동굴의 도시인 삼척에는 대금굴과 환선굴을 비롯해 수많은 석회동굴이 존재한다. 또 준경묘는 순수혈통의 금강소나무의 우람한 위용을 가장 감격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화전민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계읍 신리너와집도 빼놓을 수 없다. 이밖에도 덕풍계곡, 새천년도로, 용화레일바이크, 미인폭포 등 볼거리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먹거리=솔섬 북쪽의 호산항에 있는 미진횟집(033-572-6679)은 활어회와 함께 나오는 도다리미역국이 맛있다. 횟집촌으로 유명한 임원항이 솔섬에서 10분거리에 있다. 삼척시내 새천년해안도로의 평남횟집 펠리스호텔점(033-572-8851)도 유명하다. 곰칫국은 정라항의 바다횟집(033-574-3543)이 원조 중의 원조로 꼽힌다.
▲묵을곳=일몰부터 일출까지 솔섬의 신비로운 풍경을 시시각각 촬영하려면 하룻밤 묵는게 좋다. 월천1리 솔섬 앞쪽에 아담한 펜션이 한 채 있다. 솔섬 뒤의 호산리에는 호산비치호텔(033-576-1001)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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