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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사마귀의 자존심을 꺾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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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 참 좋은 말입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뜻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그래서 파멸로 가는 것보다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뜻이니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모두가 이긴다는 뜻에서 요즘은 윈-윈(win-win)이라는 말로 쓰여지기도 하죠.

서로가 조화를 이루고, 이롭게 하며 공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살 수 있으면 경제는 잘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서민과 부자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야당과 여당, 보수와 진보, 주류와 비주류가 상생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갈수 있다면 그게 바로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아닐까요?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종교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미래학자, 특히 동양의 사상가들은 상생의 원리가 21세기 인류를 이끌 기본지침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갈등과 대립을 화합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말은 쉽게 하지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달려가다 보니 부딪히고, 부서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가 충돌해 파멸하듯이 말입니다. 요즘 여와 야, 주류와 비주류간 평행선을 그어놓고 달리는 정치권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를 놓고, 비난과 비판이 오가는 정부-재계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은 모습을 접하며 수레를 탄 제나라 장공과 마주선 사마귀의 모습을 연상해 봤습니다.

투자, 일자리 창출에 불만을 가진 정부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 목을 조이자 재계의 맏형격인 전경련이 각을 세웠습니다. 위기가 오는 것도 모르고 국가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느냐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강제적인 상생은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관련부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입하려던 움직임은 주춤해 졌습니다. 전경련 역시 “정부와 싸우자는 게 아닌데 진의를 오해한 것”이라는 해명으로 살짝 비켜가는 모습을 취했습니다.

‘相生’이란 말을 놓고 정부와 재계, 서로가 뼈있는 할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분위기는 다소 진정된 듯합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정병철 전경련 부회장), “우리도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다”(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는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봐 갈등이 풀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재계의 대립이 완전 해소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수면 밑으로 잠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제가 지나치게 정부와 재계의 대립각을 걱정하고 있습니까?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 가슴이 아프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에 있는 한 갈등은 잠복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장공과 사마귀에 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나라 장공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산으로 사냥을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길 한 가운데 녹색의 작은 곤충 한 마리가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장공은 노기충천하여 앞발을 들고 장공이 탄 수레바퀴와 맞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가소로운 일이지요. 호기심이 동한 장공이 마부에게 질문했습니다.

“저 벌레는 무엇이냐?”

마부가 힐끗 한번보고 나더니 말했습니다.

“사마귀입니다. 저 벌레는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은 모릅니다. 제 힘은 따져 보지도 않고 적을 가볍게 여긴답니다.”

그러자 장공이 길게 탄식하면서 말했습니다.

“저 벌레가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무적의 용사가 되었을거야.”

그리고 나서 사마귀가 다치지 않도록 길을 비켜가라고 명했습니다.


사마귀의 또 다른 이름은 버마재비입니다. 버마재비는 범의 아재비, 다시 말해 범의 아저씨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수풀속의 사마귀는 숲속의 범처럼 날렵하고 사납습니다.

그러니 수풀 속에서 그에게는 거칠게 없습니다. 앞발로 움켜쥘 수 있는 어떤 생명체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면 냉큼 잡아챈 뒤 남김없이 먹어치웁니다. 숲을 어슬렁거리다가 먹이가 다가오면 일순간 동작을 멈춘 뒤 소리없이 접근, 목덜미를 덥석 물어버립니다.

그런 사마귀이지만 수레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맞서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날렵하다 한들, 숲속에서 범처럼 앞발로 먹잇감을 움켜쥘 수 있다한들 장공의 수레와 대적이 되겠습니까?


사마귀와 수레가 부딪쳤을 때 어느 쪽이 피해를 보겠습니까? 당연히 사마귀겠지요. 그렇다면 사마귀를 깔아뭉갠 수레는 사마귀를 이겼으니 ‘강한 존재’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레가 수레인 이유는 다른데 있기 때문입니다.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와 장공의 이야기를 들은 제나라의 병사들은 훗날 장공에게 더욱 충성을 다했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싸움에 임했다고 합니다. 사마귀도 목숨을 건져 숲속의 강자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고, 장공 역시 ‘강한 존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상생(相生)의 의미를 장공과 사마귀의 사례에서 찾은 것이 논리의 비약입니까?

사마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수레를 비켜가게 한 장공의 아량에서 win-win의 지혜를 찾자고 하는 게 무리입니까?


지난주 한 매체에서 취급한 선운사 주지 법민 스님의 얘기를 유심히 읽어봤습니다. 그에게서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지로 취임하자마자 창고로 사용하던 대웅전 앞 만세루를 茶室(다실)로 바꿨습니다. 절을 찾는 사람들이 대웅전 바로 앞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절 전체를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절에서 축제를 열고, 이장이 주재하는 회의에도 참석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전까지 그런 전례가 없었으니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겠지요.

그가 주민친화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머물지 않고, 발걸음이 없는 절은 죽은 곳이나 다름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대중을 멀리하면 부처님 마음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말로 개혁을 얘기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그대로 둔 채 개혁은 이루어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는 空心(공심)과 자신을 낮추는 下心(하심)이 필요한 때다.”


지금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까?

현재의 경제를 지표로만 판단, 경제체질을 건강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의 갈등과 혼란을 해소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소통의 단절과 부재를 풀어가는 방법에 오류는 없습니까?


제나라 장공과 법민스님의 사례에서 상생의 해법을 찾는 8월 첫 비즈니스 데이 되시면 어떨까요?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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