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시, 인생의 가장 자랑스런 이력"
[아시아경제 김수희 기자]"초,중,고까지 제가 제대로 나온 학교는 초등학교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검정고시는 제가 살아온 이력 중 가장 자랑스러운 자격입니다."
증권업계의 족집게, 베스트 애널리스트,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분석가 등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금융연구소장(부사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구들이다. 이렇듯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 이지만 제일 앞세우면서도 가장 지우고 싶어하지 않는 이력은 바로 검.정.고.시. 출신이다.
애널리스트계의 '최고 프로'로 일컬어졌던 그이기에 임원이 되기 전 그는 업계 최고 증권사로부터 은밀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증권사의 면접 담당자는 김 부사장이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임원에게 제출하는 이력서에 검정고시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깨끗하게 그 자리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검정고시라는 네 글자야말로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한 이력입니다. 제 노력으로 얻은 첫번째 자격이기 때문이죠."
전라도의 깡촌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에 발목이 잡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 교회에서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배워 농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은 가정형편에 이마저도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했다. 대학 역시 서울 지역을 포기하고 가까운 전남대에 입학해야만 했다.
지방대 출신으로서 차별은 그가 감수해야할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특유의 열정과 노력으로 서강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서강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라는 명함까지 얻었다.
"증권사를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매일 매일 국내 증시, 나아가 세계 자본시장과의 씨름을 해야하는 애널리스트로서는 더욱 힘들었죠."
최고의 애널리스트, 경제학계의 박사라는 두 타이틀을 함께 거머쥔 비결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김 부사장은 "성공의 열쇠는 노력과, 머리, 운 중 노력에 90% 이상이 있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아들과 딸이 있는데 팔짱 한 번 제대로 잡고 걸어본 적이 없네요. 좋은 아빠는 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애널리스트로서의 삶에만 열중한 20년, 이제 일에서의 끈을 느슨히 잡을 법도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오늘을 헛되이 보낼 수없다고 김 부사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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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야죠. 다만 오늘 최선을 다한다면 말입니다."
◆김영익 부사장은?
▲1959년 4월 18일 전남 함평 출생
▲1982년 전남대 경제학 학사
▲1984년 서강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88년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 실장
▲1997년 서강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2002년 대신경제연구소 투자전략실 실장
▲2004년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2006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상무
▲2006년 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
▲2007년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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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기자 suhee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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