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대개 새벽 첫차를 탄다.5시를 갓 넘은 시각이지만 빈자리는 거의 없다.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중반의 승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다. 이들의 복장은 대체로 비슷하다.청바지나 면바지에 티셔츠,그리고 운동화와 배낭 하나다. 구리빛으로 탄 그들의 피부위에는 찌든 담배 냄새가 남아 있다.이들이 내리는 곳은 서울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 앞.거기에는 또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는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게는 줄을 서 있다.
이들은 서울의 남부나 북서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도로공사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은 위태위태하기 짝이 없다.최근들어 돈줄을 죄라는 이른바'출구전략'이 고개를 처들고 있기 때문이다.돈줄을 죄면 부동산과 건설업이 제일 먼저 위축되고,그렇게 되면 현장 인부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다시는 새벽 첫차를 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출구전략(exit theory)이란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풀어놓은 유동성을 거두어 들이는 전략이다.최근들어서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출구전략 필요성을 제기하는 대열에 동참했으나 실행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지표만을 본다면 출구전략을 논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ㆍ4분기에 2.3% 증가했고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도 각각 3.3%,8.4% 늘어났다. 경제의 총체적 성적표라는 주가도 호조세다.최근엔 코스피가 1500을 돌파했다.고용 사정도 호전된 것처럼 보인다.신규취업자가 5월엔 21만9000명 줄었으나 6월엔 4000명 플러스롣 돌아섰다.일부 지역에선 재건축 아파트 값이 덜썩이기도 했다.돈줄을 죄지 않는다면 경기가 본격회복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주장이 먹혀드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경제가 살아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주가가 살아났다고 하나 일부 대기업의 '깜짝 실적' 덕이 크다. 실질 GDP가 개선됐다고 하나 지난 해 같은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전년 동기와 비교한 GDP는 오히려 2.5% 감소했다.민간소비(-1.1%),설비투자(-17.2%)도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신규취업자 증가도 정부의 '희망근로 프로젝트'로 임시직이 늘어난 영향 덕택이다.비정규직법 시행으로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실업자 대열에 합류한다면 7월 고용지표는 매우 암울할 것이다.수출시장인 미국은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6월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무역수지도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재정지출 여력도 급격히 소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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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반론은 현 상황을 균형감을 갖고 보자는 것이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경기회복세가 가시화될 때까지는 재정과 금융의 확장적 정책기조를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출구전략 도입론에 쐐기를 박은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는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면서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때이른 출구정책을 대공황을 불러왔다고 꼬집기도 했다.
거급 말하거니와 윤 장관은 출구전략론자들의 주장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물론 기준금리 인상,총부채 상환비율(DTI) 상향 조정 등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하고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 쓰는 것은 정부나 연구기관의 책무다. 그러나 미국에서 논의가 있다고 해서 한국도 장단을 맞추고 춤을 춰야 한다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 일부 지표만을 보고 돈줄을 죄는 등 긴축 정책을 편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하다.이중침체(더블딥)의 수렁에 빠진다는 말이다.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된다.미국식 버블이 이 나라에 있기나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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