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은 항상 소비자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의 구매가 바로 기업의 실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통업체들은 IT 기술을 이용한 CRM, 전통적인 소비자 설문 조사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수시로 변화하는 소비자의 소비 습관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는 전세계를 불황으로 몰아넣었고, 이는 우리 나리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들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소비자는 어려워진 가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이른바 현명한 소비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소비자의 태도를 반영하여 국내 유통업체에서 최근 힘을 쏟고 있는 것이 PB(Private Brand) 또는 PL (Private Label)로 불리는 유통업체 자체 개발 상품이다.
NB (National Brand)와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PL이란 제조업체가 중심이 되어 전국적으로 유통시키는 일반적인 브랜드가 아니라 유통업체에서 유통업체의 이름, 또는 유통업체가 만든 브랜드를 통해서 유통 시키는 상품을 의미한다. 외국의 경우 1880년에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해외 대형 유통 소매업체에서는 이미 전체 매출에 30%~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PB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우리 나라의 경우 1997년 이마트의 E Plus 우유의 등장을 시작으로 해서 2008년 이마트 기준으로 22개 브랜드, 16,000여 품목이 판매되어 전체 매출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PL이 처음 등장하고 현재까지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는 PL의 이미지는 '저가'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문이나 방송에 종종 등장하는 뉴스가 '알고 보니 PL이 싼 게 아니다.' 류의 기사들이다. 하지만 '원료가 달라서 가격이 낮은 것이니 PL은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다.'라는 일부의 주장이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PL이란 단순히 가격이 싼 상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PL은 고객 반응에 가장 민감한 유통업체에서 현장의 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시킨 차별화 브랜드이다. NB의 경우 특성상 모든 유통채널을 대상으로 대량 생산을 하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인 제품을 생산하여 전국으로 유통시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PL은 현장에서 다양한 소비자의 구매 행태나 의견을 듣고 이를 제조에 반영 후 유통업체의 이름을 걸고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욕구에 맞는 제품을 맞춤 생산할 수 있다.
현재까지의 PL은 차별화 포인트가 주로 낮은 가격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차별화 포인트는 그것만이 아니다. 해외의 경우 PL은 보통 일반 제품보다 비싼 고급 PL, 일반 제품과 비슷한 PL, 일반 제품보다 저렴한 PL의 세가지 라인이 존재한다.
흔히 PL을 저가 제품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만큼 고객의 목소리가 다양하고 PL의 역사가 오래된 해외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한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더 싼 가격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도 있지만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더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사겠다는 소비자들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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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양한 차별화 요소 중에서도 품질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요소이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에 차이가 없는 한도 내에서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절대 게을리 할 수 없다. 유통 마진이나 판촉비의 절감만을 통해서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NB의 제조 방법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과 다른 제조 방식이나 원료 배합을 통해서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면, 또 그것이 제품을 가격을 낮춰서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으로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그러한 노력도 정당하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기존 NB에서는 만들기 힘든 남다른 제품을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수입하여 그 제품을 적절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도 'PL은 싸야 한다.'라는 기준으로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 PL은 무조건 싼 제품이 아니고 NB로는 맞추기 힘든 다양한 품질의 제품을 다양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도 조만간 해외 선진국과 같이 PL이 보편화될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PL은 무조건 싸야 한다라는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다양하게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PL이 등장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자나 판매자, 소비자들에게 'PL=저가제품'이라는 인식이 아닌 'PL=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에 맞춘 합리적인 차별화 제품'이라는 인식이 심어져야 한다. 그것은 'PL=저가제품'이라는 손쉬운 홍보에 지금까지 열중해왔던 유통업체가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PL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유통업체가 단순히 NB와 비교를 하며 'NB 보다 가격이 싸다'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PL이란 NB와 다른 방식으로 NB와 같은,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이다.'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면 소비자는 조만간 PL의 합리성을 인정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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