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별님
정채봉 지음/솔 펴냄/9500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선종은 '명동의 기적'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종교를 불문하고 온 국민이 추모의 물결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의 허물과, 탕아들을 모두 '내 탓이오'하며 끌어 안으신 김 추기경의 큰 사랑 때문일 것이다.

새책 '바보별님'은 동화작가가 쓴 김 추기경의 이야기다. 지난 1993년에 소년일간지에 '저 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작품들을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선종 후에 출간했다.

추기경은 매일 아침 신문에 연재되는 작품을 찬찬히, 반갑게 읽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연재를 마친 후 출간을 위해 찾은 지은이에게 추기경은 당장 책으로 펴내는 것은 간곡히 만류했다고 한다.

"작품이 참 예쁘고 순수해 매일같이 읽었어요. 우리 사회의 지도적 인물도, 위인도 아닌 이 '바보'가 너무 잘 그려져 쑥쓰럽습니다. 지금은 남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우니 나 가고 난 뒤에 책으로 내더라도 내면 좋겠네요"라고 김 추기경은 당부했다고 한다.

책은 조선팔도의 천주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참형에 처하던 병인박해(1866년) 당시 남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했던 김 추기경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박해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교회 일을 돌보며 성장한 김 추기경의 아버지와 성정이 곧고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 사이에 8남매 중 막내로 김 추기경이 태어난다.

어머니가 마흔 살 늦은 나이에 태어난 막내는 어머니 젖이 늘 부족했는데, 이웃에 사는 큰 누님도 때마침 아들을 낳아 누님 젖을 먹기도 하면서 성장한다. 아이가 하도 순해서 집에서는 '순한'이라고 불렸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행상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세상에 대한 꿈과 호기심, 그리고 신심을 닦는 추기경의 어린 시절 모습이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어린시절 추기경은 나라를 잃은 민족의 슬픔을 맛보았다.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니"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주권을 찾고 싶습니다"라고 답하는가 하면, '황국 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는 문제에 "나는 황국 시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써내 교장실에 불려가기도 한다.

1941년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유학 시절에는 일본인 교수와의 대담에서도 "이 불쌍한 민족을, 배운 우리가 어찌 나 몰라라 버려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학병입영통지서가 날아들자, 계획상으로는 친구와 함께 귀국해 원산의 수도원에 숨었다가 기회를 틈타 만주로 가 독립군에 합류하려 했으나 불발로 그친 이야기도 쓰여있다.

추기경은 전쟁이 끝나자 즉시 귀국하지 않고 한인 노무자와 학병들 뒷일을 마무리지어주고, 전범재판의 증인으로도 나선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제 서품을 받은 김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와 친척, 어버이,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는 창세기 12장 1절을 되뇌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추기경의 열망에 대해서도 묘사한다. 1986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사제단의 촛불행진, 빛을 나누어 받고 꺼지면 또 나누어 받고 하며 촛불로 어둠을 밀어내며 행진하던 사람들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추기경의 일대기를 소박하면서도 뭉클하게 그린 이 책은 추기경이 좋아하는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기도문'으로 끝이난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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