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방어 '빅스텝'부터 비상계엄 대응까지…이창용의 4년은 과감했다[BOK포커스]
통화정책 변화, 한은 첫 빅스텝·2개월 연속 깜짝인하
가계부채 비율 하락…구조개혁 강조 '시끄러운 한은' 시대
계엄 당시 韓 대외신인도 세일즈…경제 부정적 영향 최소화 평가
국제무대 존재감 키운 한은…K점도표·프로젝트 한강 시작
한국은행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과 가계부채 비율 하락 반전, 그리고 '시끄러운 한은'. 이창용 총재의 임기 동안엔 한은 역사상 보기 드물었던 일이 유독 많았다. 이 총재가 취임과 함께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할 때 한은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강조하며 줄곧 기존 범주를 깨는 시도를 이어온 결과다. 이 같은 도전은 한국 경제에 무엇을 남겼을까. 오는 20일 이임식을 앞둔 이 총재의 4년을 돌아봤다.
"한은 사상 첫 빅스텝부터 2개월 연속 깜짝인하까지"
이 총재가 취임한 2022년 4월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이 상존하는 시기였다. 무엇보다 당장 눈앞에 맞닥뜨린 과제는 고물가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까지 뛰는 등(2022년 7월)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자, 한은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7월과 10월 두 차례 단행하는 초강수를 뒀다. 한은 사상 처음으로 꺼내든 빅스텝 카드였다. 이후 이 총재가 이끄는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3.5%까지 인상해 물가 오름세를 둔화시켰다.
2023년 2월부터 2024년 9월까지는 소비자물가를 목표 수준(2.0%)에 안착시키기 위해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라스트마일(마지막 걸음)'을 이어갔다. 이에 이 총재는 한은이 주요국 중앙은행 중 물가안정목표에 가장 먼저 안착하는 데 기여했단 평가를 받았다. 2024년엔 한은 총재 최초 더뱅커 주관 올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앙은행 총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4년 10월엔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내리면서 피벗(pivot·통화정책 기조전환)에 나섰다. 11월 역시 0.25%포인트 내리며 한은 역사상 이례적인 연속 인하를 감행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결과다. 한은은 물가 안정세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미국발 통상여건 악화, 경기 하방 위험에 대응해 지난해 5월까지 기준금리를 총 네 차례, 1.00%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하반기엔 수도권 주택시장 불안과 환율 변동성 심화를 근거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정치·경제 분리" 비상계엄 당시 대외신인도 수성 기여 평가
2022년 레고랜드발 단기금융시장 불안,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올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등에 금융·외환시장 불안이 커질 땐 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대처했다. 이 총재는 특히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 당시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 있다"며 시장 안정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외신인도 세일즈'를 펼쳐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한은은 시장 불안 심리가 과도하게 확산하지 않도록 시장안정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신용경색에 대비해 필요시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 등으로 외환시장 안정화 역시 꾀했다.
일각에선 2024년 10월보다 앞선 8월께 저성장에 대응해 선제적 금리 인하에 나섰어야 한다는 이른바 '실기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이후 여러 차례 "당시 과열된 집값에 금리 인하로 기름을 끼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융 불균형 확대를 부추길 우려가 커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할 땐 반대로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 않아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0일 임기 만료 전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여러 평가가 있지만)금리 결정에 관해서는 금통위원들이 잘 해주셔서 그렇게 후회스러운 면은 없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비율 꺾였다…구조개혁 강조로 '시끄러운 한은' 시대
가계부채 연착륙은 이 총재가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한 부분이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 내수가 위축되면서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을 저해할 수 있고, 부채 확대가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어서다.
이 총재 임기 동안 가계부채 비율은 하락 반전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9년 말 89.6%에서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말 97.1%로 급증했고, 2021년 말에는 98.7%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총재 취임 후 긴축적 금리정책으로 가계부채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2022년 말 97.3%, 2023년 말 93.0%, 2024년 말 89.6%에 이어 지난해 말 88.6%로 줄었다. 이 총재는 정책 콘퍼런스 개최 등을 통해 가계부채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지난해 4월 부동산 신용집중 개선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그는 "15년간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꺾인 것은 큰 변화"라면서도 이에 그치지 않고 점진적 가계부채 비율 축소를 중장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가계부채를 안 늘리겠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며 "대출 규제 등을 결정할 거시건전성 정책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가 취임 후 내내 강조한 또 하나의 과제는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이었다. 2040년대 후반 0%로 진입할 위기에 놓인 잠재성장률의 경로를 바꾸려면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한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한은은 이 총재 임기 중 저출산·고령화, 지역균형발전, 입시제도, 주택금융, 기후변화, 돌봄서비스, 자율주행택시, 연명의료, 고령층 계속근로 등에 관한 '구조개혁 연구 시리즈'를 끊임없이 내놨다. 중장기 성장잠재력과 직결된 과제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찍으며 '시끄러운 한은'으로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 등 한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 통화정책의 효과는 제약될 수밖에 없다"며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왼쪽부터)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해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중앙은행 포럼의 정책 토론 세션에 패널로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ECB 유튜브
원본보기 아이콘국제무대 존재감 키운 한은…K점도표·프로젝트 한강 시작
이 총재는 국제무대에서 한은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는 데도 일조했다. 그는 국제결제은행(BIS) 이사,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 등을 맡아 한국의 정책 관심사를 글로벌 어젠다에 전략적으로 반영했다. 역내 금융안전망(CMIM) 구조 개편, 국가 간 지급결제 논의에 초기 설계자로서도 역할을 했다. 특히 과거 주요 7개국(G7)의 전유물이었던 CGFS 의장직을 수행한 건 상징적이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최초로 Fed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유럽중앙은행(ECB) 신트라 포럼, 국제통화기금(IMF) 미셸 캉드쉬 중앙은행 강연에 참여해 한은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앞서 이 '3대 이벤트'에 모두 참여한 중앙은행 총재는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 마크 카니 전 영국중앙은행(BOE)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BOJ) 총재밖에 없었는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이 총재 임기 중 재닛 옐런 전 Fed 의장, 카르스텐스 전 BIS 사무총장,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 등이 한은을 방문해 정책 간담회를 진행, 경제계 거물급 네트워크 내에서 한은의 존재감을 키우기도 했다.
대외 커뮤니케이션 확대 역시 이 총재가 임기 중 강조한 부분 중 하나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취임한 해 10월 금통위원들의 3개월 내 조건부 금리 전망을 도입한 데 이어, 지난 2월 6개월 시계의 한국형 점도표(K점도표)를 도입해 시장과의 소통 강화를 꾀했다. 2024년 8월부턴 분기 단위 경제전망 공표를 통해 현재 경제 상황을 보다 자세히 알리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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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구조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 데도 이 총재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를 위해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 실거래 추진, '프로젝트 아고라' 참여, 정부 국고금 관리 개선사업 지원 등을 통해 디지털화폐 시스템과 예금토큰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에 대해선 '은행 중심의 점진적 도입'을 강조하며 7대 리스크를 담은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중앙은행 최초로 금융·경제 특화 소버린 인공지능(AI) 'BOKI'를 내부망에 구축하고, AI 도입과 병행해 망 통합 사업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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