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엔진 고장시 전력 끊겨 블랙박스 저장 어려워"
"ADS-B도 끊긴 걸로 보면 전체 전력 나간 듯"
비상시 CVR에 전력 공급하는 대체동력원도 설치 어려워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줘야 할 블랙박스의 '마지막 4분 기록'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엔진 손상을 당한 것이 이런 문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엔진 2개가 모두 작동이 안 되면 전력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4분 기록…양쪽 엔진 고장 가능성"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13일 "사고기 양쪽 엔진의 작동 불량으로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블랙박스가 저장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양쪽 엔진 중 한쪽만 정상 작동해도 전력은 원활히 공급돼 블랙박스 저장이 끊길 일이 없다"며 "전력 공급이 안 됐다는 것은 양쪽 엔진이 고장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도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양쪽 엔진이 멈추면서 전력이 공급되지 않은 것"이라며 "엔진이 시차를 두고 하나씩 고장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전력 공급이 끊겼고, 블랙박스 자료 저장이 안 되기 직전 항공기의 위치·속도를 외부로 보내는 항공기 위치 탐지 시스템(ADS-B)도 작동하지 않은 것은 전체 전력 공급이 막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8시 58분 사고기의 음성기록장치(CVR), 비행기록장치(FDR) 등 블랙박스의 작동이 멈췄다. 작동이 멈추기 전 8시 57분 관제사로부터 버드스트라이크 경고를 받은 뒤 8시 59분 조종사가 ‘메이데이’를 선언해 복행했다. 이후 동체착륙을 시도해 9시 3분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저장되지 않은 것이다.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승객 대부분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행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사고 기체 잔해가 놓여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사조위는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조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마지막 4분의 기록이 저장되지 않은 원인은 조사 중"이라며 "사조위의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없다"고 전했다.
CVR 대체동력원, 사고기종에 애초에 설치 어려워
전문가들은 "사고기 CVR에 비상시 전력을 공급할 대체동력원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운항기술 기준은 최근에 나온 기체에 적용되는 사항이며 사고기종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사고기종처럼 오래된 기체에 소급 적용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기종에 CVR 대체동력원을 설치한다고 해서 사고기 제작 특성상 전력이 끊기면 이를 받아주는 보조 배터리가 있어도 전력을 보낼 수가 없다"며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대체동력원 설치뿐 아니라 전력을 보낼 수 있도록 다른 장비도 다 교체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다른 기종을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고정익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 기준'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 이후 도입된 항공기는 비상시 CVR에 9~11분 동력을 자동으로 제공해주는 대체동력원이 있어야 한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인근 무안스포츠파크에 희생자 애도를 위해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희생자 위패를 만지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사고기종처럼 예전에 도입된 비행기에는 보조동력장치(APU)가 있어서 조종사가 시동을 걸어 끊긴 전력을 재공급할 수 있는데, 이번 사고는 3~4분 만에 일어난 급박한 상황으로 조종사가 APU 시동을 켜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유가족 대표단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날씨가 좋은 날 기준 3일간 현장 수색을 더 하고, 하나의 시편도 발견되지 않으면 유족 차원에서 수색 종료를 선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과 전날은 전남 무안에 눈발이 날려 수색 일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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