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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정성 쏟는다는 교복 제작…품질 논란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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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은 왜 천덕꾸러기가 됐나]
국도섬유 교복 공장 가보니
직원 140여명 분업 시스템
"업체 간 품질·소재 경쟁 필요"
교복 구매제도 개선 한목소리

부산의 교복 생산 전문업체인 '국도섬유'에서 한 근로자가 동복 재킷을 제작하고 있다. 작업량이 몰리는 1, 2월에는 주말에도 근무를 한다. /김보경 기자bkly477@

부산의 교복 생산 전문업체인 '국도섬유'에서 한 근로자가 동복 재킷을 제작하고 있다. 작업량이 몰리는 1, 2월에는 주말에도 근무를 한다. /김보경 기자bkly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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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온 정성을 다해 교복을 만듭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


올해로 16년째 교복 재킷 생산을 전문으로 해온 부산의 국도섬유 김윤호 대표는 "교복이 비싸다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국도섬유는 스마트 등과 같은 교복 브랜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1년에 700~800여개 중·고등학교 교복 재킷을 납품하고 있다. 요즘처럼 새 학기를 앞둔 시기에는 하루 8시간에 약 1000장의 재킷을 만든다. 김 대표는 "교복은 각 학교의 명예와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제각각"이라며 "디테일도 다양해 손이 무척 많이 가는 작업"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학교마다 경쟁하듯 멋지고 예쁜 디자인을 선호해 교복이 패션화하면서 "한마디로 골치 아픈 작업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복이 대표적인 다품종 소량생산 상품이라는 점도 가격 인상에 한몫한다. 교복을 입는 중·고등학교는 전국에 5000여곳, 한 학교당 학생 수는 100~200명 수준이다. 재킷, 조끼, 셔츠 등 종류별로 6피스에 학생마다 치수도 들쑥날쑥이라 결과적으로 수만 가지의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공공 조달 시장에서 학교와 거래가 이뤄지는 교복의 특성상 전교생 중 일부라도 교복을 손에 쥐지 못하면 업체가 금전적 페널티를 받는다. 김 대표는 "학생들에게 입힌다는 일념 하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며 "교복을 값어치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걸 보면 마음 아프다"라고 말했다.


교복만은 국내 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존심도 일반 SPA 브랜드 같은 저가 생산이 불가능한 요인이다. 그의 공장에서는 140여명의 직원이 작업을 한다. 외국인 근로자는 없다. 작업량이 많은 1, 2월에는 주말에도 출근한다. 학생들이 입학하기 전인 2월 말까지 전국의 교복 매장에 납품하기 위한 특근 체제다. 건물 3층에 있는 600평(약 2000㎡) 공장을 둘러보니 원단 제단 작업을 위한 자동화 설비가 구축돼있고 직원들은 철저한 분업 체계로 움직이고 있었다. 옷을 일일이 박음질하고, 핏을 살리고, 실밥을 떼어내는 마무리 작업까지. 교복 제작은 분명 사람의 손을 많이 타는 일이었다. 김 대표는 제품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할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만들어 Q 마크(품질인증)까지 달고 나오는 교복인데 '금방 해진다' '단이 쉽게 터진다'는 등 품질 논란은 왜 불거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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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논란 이유는? "저가 입찰, 촉박한 생산 일정"

김 대표는 '교복의 품질이 낮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업체 간 저가 입찰 경쟁을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다. 2015년 학교주관 교복구매 제도가 시행되면서 저가 입찰 경쟁이 과열됐다고 했다. 전국 1100여개의 교복 대리점들이 학교별로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춰 입찰에 참여한다. 김 대표는 "저가에 낙찰되면 재고 등을 고려해 최대한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질이 낮은 원자재를 쓰게 된다"면서 "이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품질도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매년 각 시·도 교육청이 정하는 교복 가격 상한선에 인건비, 원자잿값이 반영되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올해 하반기부터 민간에선 납품대금 연동제가 실시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등에 제품을 납품할 때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반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 조달 시장의 교복 납품은 지방계약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납품대금 연동제를 실시할 법적 근거가 아직 없다.

김 대표는 학교에서 교복 입찰 공고를 늦게 띄우면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자님도 기사를 급하게 쓰다 보면 오타를 내고 내용도 부실해지지 않습니까? 교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복을 2월 말까지 각 매장에 입고해야 하는데, 학교가 입찰 공고를 늦게 띄워 밤새 공장을 돌려도 촉박한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에, 교육청은 각 학교에 매년 8월까지 입찰 공고를 내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학생복산업협회는 지난해 8월까지 공고를 띄운 학교는 전체의 23%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 뒤늦게 공고를 띄운 학교도 316곳이나 있었다. 김 대표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이듬해 해당 학교 입찰에 참여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국도섬유 직원들은 1년 중 8개월만 일한다. 교복 일감이 없는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은 공장이 휴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직원들은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1년 내내 공장을 운영하고 싶지만 특정 시기에만 일감이 쏠려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며 "입찰 시기를 당긴다면 실업급여로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걸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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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으로 교복 디자인·품질 높여야"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의 정현증 사무처장은 "자율구매 시절에는 비싼 교복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품질 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이슈"라고 말했다. 교복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학교주관 교복구매 제도가 시작되기 전부터 현장에 있었다. 학교주관 교복구매로 한 벌에 50만원에 육박했던 고가 교복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품질 낮은 교복이 생산되면서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했다.


정 사무처장은 "교복 상한가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하되 학부모들이 매장을 선택해서 살 수 있게 제도를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체 간 품질·소재 경쟁을 벌이게 해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상한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받기만 하면 되는 현행 제도에선 사실상 품질 개선의 필요성이 없다"고 말했다. 선의의 경쟁으로 디자인과 품질을 높여야 하는데 지금은 저가 경쟁에 이전투구만 남았다고 진단했다. 또 일부 지자체에선 '무상 체육복' 제도를 운영하면서 체육복 지원금을 나눠주곤 하는데, 상한선이 정해지지 않아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학부모와 교복 업계 모두 올해로 9년째 시행 중인 학교주관 교복구매 제도에 손질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인천에서 교복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경쟁이 너무 심해지니까 수익이 안 나고, 도태되다 보니 담합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먹고살기 힘들어 나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몰고 가는 제도"라고 토로했다. 담합에 이은 또 다른 풍선효과는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 생산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씨는 "교복 시장은 우리나라 봉제 산업 최후의 보루"라며 "얼마 남지 않은 숙련공과 영세 교복 사업자들의 일자리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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