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간격까지 편집해서 전달… 쌍방울 수사기밀 유출 공소장 보니
[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이현주 기자] "검찰에서 뭘 수사하는 것인지, 범죄사실 만이라도 좀 알려줘."
수원지검 형사6부 소속 A수사관은 지난 5월 중순경 선배 B씨로부터 휴대전화 메신저앱을 이용한 음성 연락을 받았다. B씨는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쌍방울그룹의 윤리경영실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당시 검찰이 '쌍방울그룹 횡령·배임' 사건을 집중 수사하고 외부 관심이 높아지자 친분이 있던 후배 A수사관에게 연락해 검찰의 노림수를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쌍방울그룹 수사기밀 유출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8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A수사관은 이러한 선배 B씨의 연락을 받고 영장자료를 통째로 넘겼다.
지난 5월24일 A수사관은 검사실 업무용 컴퓨터에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킥스)에 접속, 쌍방울그룹 횡령·배임 사건의 압수수색검증영장 내용을 열람했다. 여기에는 수사대상자의 이름, 직업, 지분관계, 계좌번호, 향후 수사할 범죄사실 등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들어있었다. A수사관은 이를 복사해서 한글 파일에 붙여넣기하고 줄 간격 등까지 편집,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출력했다. 2쪽씩 모아찍어 총 6장이었다.
A수사관은 곧바로 B씨에게 음성통화를 걸고 "선배님, 저번에 부탁하신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알린 후 본인의 자택 인근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어 같은 날 늦은 오후 해당 주차장에서 A수사관은 B씨를 만나 출력물을 건네줬다.
B씨는 하루 뒤 법무법인 M의 C변호사에게 출력물을 넘겼다. C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쌍방울그룹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었다. 쌍방울 사외이사로도 이름을 올릴 만큼 그룹과 가까웠다. 출력물을 받은 C 변호사는 사무원에게 스캔하도록 한 다음 '쌍방울 범죄사실.pdf'란 제목의 파일로 사무실에 보관했다.
파일은 지난달 7일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이 의원의 변호인단으로 일한 이태형 변호사가 근무한 법무법인 M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발각됐다. 압수수색에 나섰던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는 형사6부에서 만든 문건으로 보이는 해당 파일을 입수했다. 이어 형사1부(부장검사 손진욱)가 감찰 형식으로 이 내용을 조사, 수사기밀 유출의 전말이 드러났다.
형사1부는 영장자료 유출 외에도 A수사관이 B씨에게 압수수색 시점도 몰래 알린 사실도 파악했다. B씨는 6월 중순 A수사관에게 "요즘 부쩍 언론에서 수사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도대체 압수수색은 언제 나오냐, 시기를 알게 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6월21일 A수사관은 B씨에게 "쌍방울 압수수색 영장이 어제 청구됐으니 참고하세요"라고 알렸다. 이어 22일에는 검찰이 압수수색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B씨에게 "오늘은 압수수색 안 나간다"라고 연락했다.
형사1부는 지난 23일 A수사관, B씨, C변호사를 각각 공무상 비밀누설, 형사절차전자화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A수사관의 수사기밀 유출로 쌍방울그룹 의혹과 관련된 주요인사들이 도주하고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은 6월께 해외로 출국해 현재까지도 싱가포르와 태국 등을 돌며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전 회장 등에 대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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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6부는 전날 경기 의정부시 경기도청 북부청사 평화협력국과 수원시 영통구 남부청사 소통협치국, 경제부지사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의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 압수수색은 2018∼2020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지낸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와 관련된 곳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은 경기도가 2018년 민간단체 아태평화교류협회와 주최한 대북 교류 행사 비용 8억원을 쌍방울이 부담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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