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의 재량권 남용하면 '권력'
공정한 조직은 시스템이 보장해야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이유가 어디 있어,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
올해 10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범죄도시2’에서 베테랑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베트남에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강해상’(손석구)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베트남이 마 형사의 ‘나와바리(세력이 미치는 범위)’인 금천경찰서 관할 구역에서 한참 벗어났지만, 범죄자를 잡는 것은 경찰의 ‘업(業)’이기 때문에 이유를 막론하고 우선 잡아야 한다는 그의 대사는 ‘권선징악’을 갈망한 관객들에게 ‘핵사이다’가 됐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많다. 검찰이 주요 공직을 꿰차면서다. 기자의 나와바리(출입처)인 금융감독원도 설립 이후 처음으로 검찰 출신이 수장이 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일성부터 1조60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한 라임 사태에 대한 재조사를 언급하며 심상치 않은 수사 본능을 보였다. 실제 이 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은 금융범죄와 전쟁을 벌인다고 여길 정도로 조사에 적극적이다.
우선 지난달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 에디슨모터스가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즈)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검찰에 넘겼다. 에디슨EV는 지난해 5월 에디슨모터스를 이끄는 강영권 대표가 최대주주인 에너지솔루션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당시 6000원대에 불과하던 주가는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차 인수전 참여 소식이 알려지면서 11월 8만2400원까지 치솟았는데, 지난해 초부터 에디슨EV 지분 40%가량을 사들인 디엠에이치, 에스엘에이치 등 투자조합 6곳은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 대부분을 처분하며 큰 차익을 봤다. 이후 쌍용차 인수는 불발됐고, 에디슨EV는 올해 3월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검찰에 넘긴 것 자체가 주가조작이 있었다고 금감원이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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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또 공매도 조사팀을 신설해 이번주부터 가동에 들어간다.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던 공매도가 빈번한 외국계 증권사 등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이 원장은 미국 잭슨홀 미팅 여파로 국내 증시가 급락한 전날 열린 긴급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에서도 "불법공매도를 신속하게 조사하고 불법, 불공정 행위를 엄정히 처벌하겠다"고 했다. 앞서 우리은행 횡령사고와 신한·우리은행의 이상 외환송금 논란에 관련해서도 이례적으로 중간 결과를 발표하며 신속한 처리 모습을 보여줬다.
우려스러운 점은 금감원 조사의 선택적 공개다. 행정력은 필연적으로 재량권을 갖는데, 재량권을 남용하면 권력이 된다. 어떤 사안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조사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고, 어떤 사안은 관심을 덜 받는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면 공개 여부가 권력이 될 수 있다. 검찰이 그동안 개혁 대상으로 꼽힌 것은 기소권을 이용해 무소불위 권력을 가졌다는 비판 때문이 아닌가. 물론 이 원장은 검찰 재직 시절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을 밝혀내 성역 없는 수사를 보여줬다. 하지만 공정한 조직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보장할 때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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