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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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선포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됐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30일 나온다.


2013년 긴급조치 9호를 위헌·무효로 판단하고도, 2015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이유로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부정한 대법원의 입장이 바뀔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오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됐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본인, 가족, 상속인 등이 청구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을 진행한다.


이번 사건의 원고들은 1970년대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체포·구금됐다가 풀려나거나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한 본인 내지 상속인들이다.

1975년 5월 제정·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 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거나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청원·선동·선전하는 행위, 학생의 집회·시위 정치관여 행위 등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등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개정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했다.


그리고 같은 해 대법원도 "긴급조치 9호는 그 발령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 제53조가 규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청원권,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이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법원의 형사보상결정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이후 피해자들은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2013년 9월 국가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15년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했다.


이처럼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행사에 따른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했지만, 이후 일부 하급심에서는 대법원의 결론과 다른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원고들은 주위적으로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 자체가 위법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이유로, 예비적으로는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해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직접 피해를 당한 본인들에게는 소득 상실분(일실수입)과 위자료를, 가족 등 나머지 원고들에게는 위자료를 배상해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서 1심과 2심은 기존 대법원 판결을 들어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비록 긴급조치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됐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또 당시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에 의해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해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유신헌법 제53조 4항이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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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한 뒤 심리를 진행해 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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