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와치] 취향을 탐닉하는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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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쏘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에쏘바는 에스프레소바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에스프레소만을 단일메뉴로 판매하는 카페다. 요즘 에쏘바는 가장 핫한 외식문화다. 에스프레소에 대한 필자의 첫 기억은 이렇다. 2000년대 초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논술고사를 보기위해 상경했을 때 시간이 남아 들어간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골랐는데, 그게 에스프레소였다. 서울 변두리 도시에서는 스타벅스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양은 적고 쓰기만 하던 에스프레소를 일부러 찾아가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곱게 간 커피원두 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내는데, 25mL 이내의 양으로 ‘데미타세’라는 조그만 잔에 담아 마신다.


사실 한국의 커피취향은 오랫동안 ‘아메리카노’였다. 따아(따듯한 아메리카노)냐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냐가 취향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던 시장에 ‘에스프레소’가 등장하고 있다. 에스프레소 유행은 다양한 원인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바에 서서 빠르게 마시는 문화 자체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재밌다. 또 2000원 안밖의 저렴한 가격도 유행에 일조한 원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스프레소의 베리에이션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코코아 파우더가 올라간 나폴리식 ‘에스프레소 스트라파차토’, 휘핑크림을 올린 ‘에스프레소 콘파냐’, 우유 거품을 올린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등 크림이나 카카오 분말, 우유, 생크림 등을 조금씩 더해 다양한 맛을 즐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에스프레소 여러 잔을 마시고 블록처럼 잔을 쌓아올린 인증샷이 유행이다.

‘나는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쩐지 ‘아메리카노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있어보인다. 즉,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되고 타겟팅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을 한 분야에 집중하고 탐닉하는 마니아적 소비라는 뜻에서 ‘디깅소비’라고 부른다.


디깅소비는 커피에서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핫하다는 동네에는 베이글 가게들이 관찰된다. 한옥이 즐비한 북촌 거리에 있는 한 베이글 전문점 앞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오픈런(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러한 베이글 전문점도 에쏘바와 비슷한 특징을 갖는다. 단일메뉴인 베이글만 판매함으로써 기존 카페에서 팔지 않는 세분화된 종류를 선보이고, 뉴욕이나 런던에서 먹어볼 수 있는 정통의 맛을 추구한다.

고기 취향도 세분화된다. 대표적으로 안창살, 토시살, 꽃갈비살 등 고급 특수부위 매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요리법도 다양해진다. 끓지 않는 물로 오랫동안 데우는 ‘수비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이크 요리부터 에어프라이어로 ‘리버스시어링’(고기 내부를 먼저 익힌 후 겉면을 익히는 방식)을 하는 법까지 다양한 레시피를 공부하고 탐닉한다. 숙성한우 제품도 인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저온에서 약 15일간 냉장 숙성하는 ‘웨트에이징 한우’의 2021년 매출은 2020년 보다 15% 증가했다고 한다. 이마트에서도 2016년 10억 원 수준이었던 웨트에이징 한우 매출이 2021년 100억 원대로 10배 이상 폭증했다.


취향의 세분화는 오마카세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오마카세란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이 요리사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고 요리사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제철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일식에서 시작된 문화지만 최근에는 한우, 위스키, 디저트, 차(tea)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한우 오마카세는 1인당 5만원~20만원대에 이르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2030소비자의 핫플로 등극하며 ‘수강신청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소문난 식당들은 벌써 몇 달치 예약이 차 있기도 하다. 차 오마카세 혹은 티코스도 인기다. 시즌별로 어울리는 차와 디저트를 소개해주고 차에 얽힌 스토리텔링까지 들을 수 있다.‘하동 녹차에 율무와 현미를 블렌딩한 ‘베이크드 그린티’, ‘스모키한 기문 홍차에 은은한 벚꽃을 더한 시그니처 음료’ 등 흔한 녹차와 홍차가 아니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보통 1~2시간 동안 티 소믈리에의 설명이 깃들여지기 때문에 티 코스는 MZ세대에게 일종의 명상이나 새로운 경험소비로 여겨진다.


이처럼 남다른 취향을 발견하고 탐닉하고자 하는 소비가 시장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과시의 수단이라거나 SNS의 보여주기식 문화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나만의 취향을 하나쯤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더불어 점점 미지의 세계를 탐닉하고 싶어하는 소비자에게 낯설고도 특별한 경험과 취향을 제안해야 하는 시장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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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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