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서 100L 쓰레기봉투 날라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이 사망의 주된 원인
관리자 갑질도 스트레스 일부
"청소 노동 과중함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있어"

지난 9월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관계자들이 서울대 청소노동자 고 이모 조합원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 9월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관계자들이 서울대 청소노동자 고 이모 조합원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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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지난 여름 엘레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에서 일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이모씨(59)가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로부터 산업재해(산재)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서울 관악지사는 27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이씨의 유족에게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이 승인되었음을 정식으로 통지했다.

질판위는 ▲이씨가 학생 196명이 있는 925동을 혼자 맡아 청소를 해 온 것으로 보이는 점 ▲80년대 건축된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에서 계단을 통해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던 점 ▲코로나 이후 쓰레기 증가로 업무 부담이 가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156cm의 작은 키로 신체 부담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이는 점 ▲업무시간만으로 산정되지 않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지속됐다고 판단되는 점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질판위는 또 고용노동부 관악지청이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상사 갑질에 의한 추가적인 스트레스도 사망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7월1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사망한 청소노동자의 추모공간이 설치된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7월1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사망한 청소노동자의 추모공간이 설치된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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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고인은 지난 6월26일 휴게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담당했던 관악학생생활관 925동은 4층 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을 정도로 낡아 다른 건물보다 청소일을 하기 열악한 조건이었다. 각층 샤워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곰팡이가 자주 끼었고, 천장에 핀 곰팡이를 닦느라 이씨는 수근관증후군(손목터널증후군)이 걸려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 이후 학생들이 배달 음식 등을 시켜먹기 시작하면서 쓰레기가 크게 늘어 이씨의 업무 부담이 가중됐다. 이씨는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하루 평균 100L짜리 쓰레기 봉투를 4개 이상 수거해야 했다.


논란이 커진 건 이씨가 평소 서울대 기숙사 안전관리팀의 직장 내 갑질에 시달려왔다는 폭로가 터져나오면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노조)과 이씨의 동료들은 안전관리팀 관리자 A씨가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상관 없는 건물명을 영어와 한자로 쓰는 시험을 치르고 시험 결과를 공개해 모욕하는 등 갑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 조사결과에 따르면 A씨는 매주 한 차례 청소노동자 회의를 진행하면서 볼펜과 수첩을 가져오지 않거나 작업복을 입고 회의에 참석할 경우 인사평가에서 1점을 감점했다. A씨는 회의에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 여성은 최대한 멋진 모습"이라는 '드레스코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 관악지청은 지난 7월30일 업무와 관계없는 필기시험 실시와 근거 없는 복장 간섭 및 품평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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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대리한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질판위는 이씨의 죽음의 주된 원인이 고강도 청소 업무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판정한 것"이라며 "이씨의 사망 전 12주 간 평균 근무시간은 44시간55분으로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에 미치지 않았지만 청소 노동의 과중함을 만성적 과로의 요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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