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

[이종길의 영화읽기]흥분 가신 가을의 기적…최동원 조명마저 밋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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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승 27승을 했었고,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했는데, 제가 한 번 더 지금 몸이 젊다 그러더라도 '그러한 경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해볼 수 있는 그런 해였던 거 같아요."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 도입에 배치된 최동원(1958~2011)의 회고다. 그가 가리킨 해는 1984년. 프로야구는 전·후기 리그에 팀당 쉰 경기씩 치렀다. 최동원은 롯데 에이스였다. 전기 리그에서만 스물한 경기를 뛰었다. 주로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으나 위기 상황에 투입되기도 했다. 성적은 9승 7패 1세이브. 롯데는 4위를 했다. 후기 리그를 앞두고 도이 쇼스케를 수석코치로 데려와 대열을 정비했다.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의 전천후 출격을 예고했다. "동원이의 선발 출전은 모험이다. 만에 하나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다. 선발을 다른 투수에게 맡기면 뒤에 동원이가 버티고 있어 불을 끌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동원은 후기 리그에서 무려 서른 경기에 등판했다. 2.6일당 한 번꼴로 등판해 18승 6패 5세이브를 기록했다. 롯데는 정상에 올라 전기 리그 우승팀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1984 최동원'은 그 일곱 경기를 돌아보며 최동원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김시진, 김용철, 김용희, 김일융, 이만수 등 동료선수들의 추념을 곁들여 만고불멸할 업적을 기념한다. 조은성 감독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한국시리즈를 오히려 차분하게 전달한다. 과거 경기 영상에 주변 인물들의 회고를 가미하는 데 그쳐 또 다른 감동이나 흥분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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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시리즈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고 야성적이었다. 롯데는 삼성의 '져주기 게임'으로 수월하게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강 감독은 코치·선수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최동원에게 1·3·5·7차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거 너무 무리 아닙니까?" "동원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알았심더. 한번 해보입시더."


최동원은 1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승(4-0)을 거뒀다. 롯데는 그가 빠진 2차전에서 2-8로 졌다. 최동원은 3차전에서 삼진 열두 개를 잡으며 완투승(3-2)을 기록했다. 그러나 4차전에서 0-7 완봉패를 지켜봐야 했다. 그는 5차전에서 2-2로 맞선 7회 정현발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패전을 떠안았다. 롯데는 주저앉는 듯했으나 6차전에서 상대 에이스 김시진을 상대로 3점을 뽑아 불씨를 되살렸다. 이내 투입된 최동원은 남은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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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마지막 7차전. 최동원은 2회 3점을 내주고 6회 오대석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8회 유두열의 타구가 장쾌한 포물선을 그려 한국시리즈 네 번째 승리와 함께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롯데는 1992년 한 번 더 정상에 올랐다. 1984년 우승만큼 감동적이진 않았다. 최동원이 일군 쾌거는 롯데 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팬이 공유한 기적과 같았기 때문이다.


근래 스포츠 다큐멘터리들은 이런 경기를 현란한 편집과 특수효과로 보여준다. 당시 못잖은 긴장과 흥분을 부여해 결과를 알아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냉철한 시각으로 경기의 이면을 과감히 들추기도 한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 경쟁에서 전쟁으로',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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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최동원'은 오로지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지만 이마저도 입체적이지 않다. 최동원은 누구보다 굴곡진 인생을 걸었다.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 노히트노런, 메이저리그 계약, 대륙간컵 대회 최우수선수(MVP), 조기 은퇴…. 선수협의회를 발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각 구단 주축 선수들을 만나 최저 생계비, 경조사비, 연금 등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구단들의 강한 반발로 결성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김시진과 트레이드돼 롯데를 떠나야 했다. 은퇴 뒤에는 부르는 구단이 없어 지도자로서 절치부심했다.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각오와 의지. 그것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기적을 만든 동력으로 조명돼야 하지 않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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