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재단, 석유 투자 중단…올들어 1500곳 기관 돌아서
한때 세계 시총 1위 엑손모빌…현재는 전성기 절반 수준
행동주의 펀드에 이사회 25% 뺏기고 40년만에 첫 年적자
올해 3분기 간만에 대규모 이익…친환경 투자할 지 관심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자동차왕' 헨리 포드(1863~1947)가 1936년 설립한 포드 재단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포드가 20세기 석유 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컸다. 석유는 19세기 말까지 조명용 연료로 주로 활용되다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이 1879년 전기조명을 발명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포드가 자동차를 발명한 덕분에 석유시장은 다시 살아났다.


포드 재단의 재원은 160억달러에 달한다. 특정 가문이 운영하는 민간 재단으로는 최대 수준의 규모를 자랑한다. 아이비 리그를 대표하는 하버드 대학의 기부금 펀드도 지난 9월10일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하버드 대학의 기부금 펀드는 420억달러로 대학 기금 중 최대 규모다.

올해 화석 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한 기관투자가가 속출하고 있다. 친환경 정책을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디베스트인베스트는 지난달 26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약 1500개 기관투자가가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며 금액으로는 39조2000억달러(약 4경6020조원) 규모라고 밝혔다. 디베스트인베스트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에는 181개 기관, 520억달러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탈석유, 친환경 흐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석유 시대를 주도한 정유사들은 전례 없는 주주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

美·유럽 최대 정유사 압박하는 친환경 투자

미국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는 지난달 27일 유럽 최대 정유회사 로열더치셸의 회사 분리를 요구했다. 서드포인트는 셸을 기존 정유업을 영위하는 회사와 신재생에너지 분야 등 새로운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을 맡는 회사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환경 투자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셸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며 회사를 분리하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셸은 친환경 단체의 압박도 받고 있다. 셸은 지난 5월 친환경 비영리단체 프렌즈오브디어스(Friends of the Earth)와의 소송에서 패했다. 프렌즈오브디어스는 셸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면서 기후변화를 유발하고 있으며 이는 셸이 인권을 보호한다는 스스로의 의무 규정도 위반하는 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지방법원은 프렌즈오브디어스의 손을 들어주며 셸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보다 45% 줄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셸의 2030년까지 감축 목표 20%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을 줄이라고 한 것이다.


당시 판결 영향 탓인지 셸은 지난 9월 미국 텍사스 유전 시추권을 보유한 자회사 퍼미언베이슨홀딩스를 9500만달러를 받고 미국 정유회사 코노코필립스에 매각했다. 퍼미언베이슨은 미 최대 유전인 서부 텍사스 지역에 22만5000에이커(약 910㎢) 규모의 유전 시추권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포커스] 사라진 4경6000조…자동차 제국도 석유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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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정유회사 엑손모빌도 친환경 행동주의자 펀드인 엔진넘버원(Engine No.1)에 이사회 의석 12석 중 3석을 내줬다. 엔진넘버원의 엑손모빌 지분율은 0.02%에 불과하다. 하지만 엔진넘버원은 친환경 투자라는 대의를 앞세워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엔진넘버원은 친환경 투자를 주장하며 엑손모빌 주식 6.68%를 보유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대형 미국 연금펀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지난해 초 연례서한에서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세븐 시스터스’ ‘시총 1위’ 등 영화는 모두 과거로

엑손모빌의 대런 우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미국 2위 정유업체 마이크 워스 CEO를 만나 양사 합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시 합병 논의 소식을 전하며 스탠더드오일을 언급했다. 록 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은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정유시장의 91%를 장악했다. 스탠더드오일은 반독점법에 걸려 1911년 34개 회사로 쪼개졌다. 엑손모빌과 셰브론 모두 원래 스탠더드오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탠더드 오일은 해체된 뒤에도 국제 원유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 로열 더치 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전신인 앵글로-이란 석유 등과 함께 ‘세븐 시스터스(Seven Sisters)’로 불리며 세계 원유시장을 좌지우지했다.


한때 너무 영향력이 커 강제 분리됐던 석유 메이저들이 이제는 다시 힘을 합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엑손모빌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이었다. 2013년까지 애플과 시총 1위를 다퉜다. 당시 시총은 4000억달러를 넘어 5000억달러를 넘봤다. 하지만 현재 엑손모빌의 시총은 2700억달러에 불과하다. 셰브론(2200억달러)을 합쳐도 5000억달러를 넘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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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손모빌은 지난해 4개 분기 모두 손실을 기록하며 최소 40년 만에 첫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다행히 최근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엑손모빌은 올해 3분기에는 2017년 이후 가장 많은 68억달러 순이익을 기록했다. 셰브론도 2013년 이후 가장 많은 60억달러 순이익을 신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유사들이 모처럼 만의 대규모 이익을 어떻게 쓸지 궁금하다며 미국의 정유사들은 유럽의 경쟁업체들에 비해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다각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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