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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샤넬'은 어떻게 '워너비 브랜드'가 됐을까 [히든業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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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해방의 아이콘' 가브리엘 샤넬
마릴린 먼로가 '입고 잔' 향수…'샤넬 No.5'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색상 '블랙' 활용

샤넬 매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샤넬 매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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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가 있다. 에르메스·루이뷔통과 함께 3대 명품으로 꼽히는 '샤넬(CHANEL)'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샤넬은 사회적 편견과 성적 차별에서 벗어난 혁명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샤넬이 긴 세월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가브리엘 샤넬


샤넬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샤넬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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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창업자인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1883년 프랑스 소뮈르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샤넬의 어머니는 그가 12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가난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결국 그를 보육원으로 보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냈던 그는 보육원에서 바느질 등 의복에 관한 기술을 익혔고, 성인이 된 직후 보육원을 나와 봉제공장에 취직한다.

그러나 봉제공장만으로 돈을 벌기 턱없이 부족했던 그는 밤에도 조그마한 술집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당시 샤넬은 오펜바흐가 작곡한 '코코리코(Ko Ko Ri Ko)' 등을 불렀는데, 샤넬의 노래를 듣던 술집 손님들은 그에게 '코코(CoCo)'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후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본명 대신 '코코 샤넬'이라는 별명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던 중 샤넬은 영국인 재력가 아서 에드워드 카펠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1910년 파리의 패션 거리 캉봉가에 샤넬 모드(ChanelModes)라는 가게를 차렸다. 당시 최고의 연극배우였던 가브리엘 도르지아가 자신의 연극 '멋진 친구들'에서 샤넬의 모자를 착용하면서 그의 모자는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3년 후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양 휴양도시였던 도빌 지역에 최초로 부티크를 오픈했다. 이곳에는 모자 외에도 다양한 의상들이 채워졌는데, 특히 유명했던 것은 발목이 보이는 치마였다.


당시 여성들은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받쳐입으며 정형화된 모습에 갇혀있었다. 그런데 샤넬이 선보인 이 디자인은 갑갑했던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주는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여성들은 전쟁과 함께 사라진 남성들을 대신해 일을 해야 했다. 이에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의복 스타일이 아닌 샤넬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샤넬은 얇고 가벼운 저지 천을 활용해 투피스를 만들었고, 이는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 마릴린 먼로가 사랑한 향수 '샤넬 넘버5'

향수 '샤넬 넘버5'. 사진=샤넬 홈페이지

향수 '샤넬 넘버5'. 사진=샤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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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큰 인기를 끌게 된 요인 중 하나로 '샤넬 넘버5'를 빼놓을 수 없다. 1921년 첫선을 보인 이 향수는 100년 동안 많은 여성을 매료시켰고, 여전히 향수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향수는 조향사인 에르네스토 보가 만든 샤넬의 첫 향수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여성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당시 향수는 한두 종류의 꽃만으로 원료를 만들었기에 향기가 쉽게 날아갔다. 향기를 지속해서 내기 위해선 많이, 자주 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샤넬 넘버5'는 장미와 재스민 등 80여 종의 다양한 꽃을 이용해 은은하면서도 지속적인 향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 향수가 더욱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 때문이었다. 마릴린 먼로는 "어떤 잠옷을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넘버5"라고 답했고, 이후 샤넬의 인기는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 블랙, 질리지 않는 매력적인 색상

'리틀 블랙 드레스'의 디자인. 사진=보그 인스타그램

'리틀 블랙 드레스'의 디자인. 사진=보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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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세계 패션의 전설적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1926년 선보인 '리틀 블랙 드레스' 때문이다. 당시 올 블랙은 일상을 위한 색상이 아니었다. 올 블랙은 도둑이나 강도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들이 입는 색상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은 샤넬에 의해 바뀌었다. 샤넬은 단순하면서도 질리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구상했고, 그 옷이 바로 올 블랙으로 된 '리틀 블랙 드레스'였다. 샤넬은 이 옷을 잡지사에 실었고 이는 큰 반향을 이끌었다.


당시 샤넬은 "블랙이야말로 모든 색상을 담고 있는 색이다. 화이트도 마찬가지다. 그 아름다움은 절대적이다"고 말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샤넬은 화이트와 블랙으로 구성된 다양한 신제품을 매번 출시하고 있다.


◆ 가브리엘 샤넬의 빈자리 채운 칼 라거펠트


칼 라거펠트. 사진=칼 라거펠트 인스타그램

칼 라거펠트. 사진=칼 라거펠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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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가브리엘 샤넬이 세상을 떠난 뒤 브랜드를 이끈 건 칼 라거펠트다. 1983년 라거펠트는 샤넬의 모든 디자인을 총괄하는 패션 아티스틱 디렉터로 합류했다.


그는 4년 뒤 시계 부서를 설립했고 1997년엔 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에 시계&주얼리 매장을 열었다. 또 그는 샤넬의 영역을 스킨케어 등 뷰티 쪽으로 확장했고, 레디투웨어(기성복) 종류도 늘렸다.


2000년대 들어선 미국, 러시아, 홍콩 등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니며 다양한 테마로 샤넬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는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 가치 등을 보여줘 샤넬이 세계로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칼 라거펠트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샤넬의 패션 스튜디오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샤넬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가브리엘 샤넬 이후 임명된 첫 여성 크레이티브 디렉터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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