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프레임] 사진, 길고 깊은 연애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고함
나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작업이었던 죽음. 아직도 차디찼던 5월 어느 새벽, 내 동생을 속초 앞바다에 빠뜨려 놓고는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에 대한 사랑이 동생에 대한 측은지심을 모른 척했다. 그렇게 나의 질긴 사진과의 연애가 깊어지고 있었다. 1991년 속초. 사진 제공=조아조아스튜디오
[아시아경제 ] 사진을 찍는다는 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그것이 풋사랑이든 외사랑이든, 질기고 질긴 인연의 사랑이 되든. 이제 막 사진과의 사랑을 시작하려는 갓 스물살쯤의 친구들을 면접을 통해 만났다. 이틀 동안 160명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5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아마 그들에게, 아니 어쩌면 내게 더 뜻 깊은 시간이었던 듯하다. 쉼 없이 계속되는 면접은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고 등짝은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었으며 다리는 퉁퉁 부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명까지 나의 혼을 불사르듯 질문을 했고 그들의 대답을 마스크와 마스크 사이로 귀 기울여 들었던 이유는 스무살배기 친구들의 사진과 그들의 열망이 가득한 눈과 갈증이 가득한 목소리에서 30년 전의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사진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지도 몰라서 막막했으나 사진 아니면 죽을 것만 같았던, 사진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던, 수많은 3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데 어찌 내가 허투루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혹시나 떨어졌다고 해서 실망하고 포기하지 말기 바란다. 그대들의 열망과 두근거리는 심장이 있다면 사진이란 놈은 배신하지 않는다. 조금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돌아간다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는 그대들을 더 깊고 강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고 그 경험들이 그대들의 작업에 알게 모르게 침투할 것도 분명하다. 예술가에게 내재된 잠재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반영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 예비 아티스트인 그대들의 사진에도 묻어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더 깊은 사랑에 빠져라! 페로몬이 솟구쳐 콩깍지가 씌는 그런 사랑이 아닌, 더 깊이 상대를 이해하고 보다듬어주고 가끔은 거리를 뒀다가 다시 다가가 손을 내미는 그런 사랑을 하라. 가끔 사진이란 놈이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그놈이 미워질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대들이 사진이란 놈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런 감정들은 우리의 사진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니까!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새벽, 그 시절의 내 감정과 이야기가 빼곡히 써있는, 나의 첫 번째 에세이 '왜관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를 꺼내 들었다. 그 책 안에는 그대들이 찍어온 사진들과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사진들이 넘쳐났다. 어둠과 외로움, 강박관념, 죽음, 시간들이 점철된 사진이든 예술이든 뭐든 자기 창작물을 막 시작하는 사람들의 주된 공통 관심사인 그것들 말이다. 그렇게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그대들도 나도 천재가 아님이 분명하다. 우린 단지 사진과 깊고 질긴 연애를 시작했을 뿐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얼마나 오래일지는 모르지만 깊고 질긴 연애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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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사진작가 /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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