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공정하지 않은 '공정경제3법' 답답한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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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4대 그룹을 포함한 10여개 주요 대기업 사장급 인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재계를 대표하고 있는 경제단체가 비공개 만남을 주선했다. 대화 테이블에는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올랐다. 이때는 40일 동안의 입법 예고 기간이었다. '오프 더 레코드(기록에 남기지 않는 비공식 발언)'를 전제로 했기에 극히 현실적 이야기가 허심탄회하게 오갔다. 그러던 중 일찍이 지주회사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쳐 모범 사례로 꼽히는 한 대기업의 경영진이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를 두고서다. 사실 이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에도 도입을 시도했다가 유야무야로 사라진 전례가 있어 새로운 논쟁거리는 아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쉽게 말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을 겸할 1인 이상의 이사를 처음부터 별도로 분리해 뽑고 이사회 일원으로 넣자는 얘기다. 주총에서 먼저 이사를 일괄 선임하고 이들 중에서 감사위원을 정하는 현행법상으로는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이사회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법을 개정하자는 취지에는 백번 공감한다.

문제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기업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도입한 이 제도가 오히려 경영권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의 맹점 탓이다. 지분 쪼개기로 3%룰을 무력화할 여지는 차고 넘친다.


지난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경영권 공격을 당한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자. 현행법대로라면 현대차는 현대모비스(지분율 21.43%)와 정몽구 회장(5.33%), 정의선 수석부회장(2.62%)이 주요 주주라서 이사 선임 과정에서 총 29.3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의 3%룰을 적용하면 이들의 의결권은 합쳐봐야 8.62%뿐이다. 엘리엇 같은 투기성 펀드나 기관투자가 여럿이 작당한다면 주요 기업의 감사위원회를 장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영권 위협 의도가 없더라도 비우호적 세력이 이사회 멤버가 되면 기밀이 담긴 사업 계획이나 회계 장부 열람이 가능하며 주요 의사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는데, 과연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의 순기능이 부작용을 앞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는 자회사 지분율이 높은 지주사에는 그야말로 직격탄이다. 지주사와 기타 주주가 각각 자회사 주식을 절반씩 들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극단적 예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 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3%와 50%로, 최대 47%포인트 벌어질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를 대표 사례로 들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꽤 있는 공정거래법상 다중대표소송제나 사인의 금지청구제, 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대한민국을 '소송 공화국'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일명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176석의 거대 여당이 있는 한 몇 차례 입법에 실패했던 이들 법안은 어느 때보다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 16년 의정 활동 중 유일하게 대표 발의한 법안이 동일한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기도 해 여와 야의 이데올로기 정쟁으로 번지기도 애매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계는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의원실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다니고 있다. 일방통행이 아닌 이해 당사자 모두가 귀를 열고 유연성을 발휘해 목표의 접점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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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산업부 차장 kimhye@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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