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15억 자사주 대박'이 남긴 것
AD
원본보기 아이콘


그들은 왜 퇴사 보너스를 주는가? 이 흥미로운 질문이 향하는 곳은 자포스(Zappos)다. 아마존이 소유한 온라인 신발 쇼핑몰이다. 얼마 전 신발 한 짝 또는 크기가 다른 두 짝을 판매해 화제가 됐던 곳이다. 여성 고객이 남편에게 선물하려고 부츠를 주문했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조화를 보내 위로했던 바로 그 기업이다.


퇴사 보너스의 정확한 명칭은 '퇴사 장려금'(Pay to Quit). 명함에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신입 사원이 대상이다. "당신의 철학이 우리 회사와 맞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다면 보너스를 줄 테니 기꺼이 회사를 떠나라는 것이다. '서비스가 성장의 원동력'(Powered by Service)이라는 슬로건이 말하듯 자포스는 '극한의 서비스'를 지향한다. 퇴사 보너스는 그 연장선이다. 조직과 개인의 비전이 일치하지 않을 바에는 아름다운 작별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운 작별도 있다. 상장 대박을 터트렸지만 퇴사자가 속출하는 SK바이오팜이다. 바야흐로 'K바이오 시대'에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ㆍ허가를 독자 진행해 미국 진출에 성공한 '국내 1호'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를 증명하듯 기업공개(IPO) 사상 최대 규모인 31조원에 달하는 청약 증거금을 끌어 모았다. 주가는 여전히 공모가(4만8000원)를 웃돈다. 누가 봐도 블루칩(우량주)이 틀림없지만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 일부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들리는 바로는 40여명이 퇴사를 결정했다. 전체 임직원이 207명이니 4명 중 1명꼴이다. 우리사주는 보호예수 기간이 1년이어서 주식을 팔려면 지금 퇴사해야 한다. 이들이 손에 쥐는 금액은 1명당 15억원 정도. '인생 로또'를 노리는 심정은 얼추 짐작이 된다. "내가 얼마나 이 회사에 다니겠는가. 그러니 지금 기회를 잡자." 예컨대, 미래의 기대 수익보다 현재의 보장 수익에 '올인'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경영진은 못내 섭섭했나보다. 퇴직금을 늦춰 지급하려는 소심한 복수를 꾀했다가 불발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회사와 직원이 미래를 함께 하자는 언약의 상징이었던 '우리사주'는 그렇게 새드엔딩을 향하고 있다.

이런 일도 있다. 카카오와 KB금융이 합작한 카카오뱅크에 KB금융 직원 10여명이 파견갔다. 카카오에 남을지 KB금융으로 돌아갈지 결정해야 하는 작년 말, 단 한 명도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에도 금융권과 대기업 경력직들이 대거 몰렸다. 직원들을 빼앗긴 기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기껏 키워놨더니…" 이것을 전통 산업의 위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 시장에 진출한 네이버와 카카오가 메기가 아니라 고래일 수 있다는 그런 위기감.


'개인의 합'이 '조직'이라지만, 예전만큼 조직이라는 이름의 중력은 강하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갈수록 개인화되는 세태의 결정판이다. 조직에 오래 의탁해온 기성 세대들과 달리 젊은 세대들은 소속감과 연대감이 느슨하다. 이들의 최우선 가치는 자신의 행복이다. 그런 세태가 SK바이오팜이나 카카오뱅크의 사례로 드러났을 뿐이다.


산업 지형이 급변하는 탓도 있다. 지난 10년간 미국 시총 상위 10위권에서 무려 절반이 교체됐다. 전통 산업이 물러난 자리는 ICT 기업들이 꿰찼다. 지금 상위 10위권이 향후 10년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현재의 위상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불확실성은 개인주의라는 이름의 원심력을 더욱 키운다. 이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AD

장기간의 재택근무로 물리적 연대감이 이완되는 것은 기업에 큰 걱정거리다. 갈수록 개인화되는 세태에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나. 자포스의 퇴사 보너스가 정답은 아니지만 작은 힌트를 남긴다. 개인주의라는 원심력이 커질수록 조직이라는 중력을 어떻게든 강화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비전이든 혁신이든, 혹은 가치관이든.


이정일 부국장 겸 4차산업부장 jay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