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청론] 슬기로운 정부와 슬기롭지 못한 의사
의대 정원 확대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실력과 인격을 갖춘 것은 물론 바쁜 와중에도 행복을 만끽할 줄 아는 '쿨'한 젊은 의사들의 일상을 통해 대중이 원하는 의사의 모습을 그려냈다. 주인공은 산부인과, 흉부외과, 외과, 소아외과 등의 전문의들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극적 상황을 다루는 이런 과목들은 의학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전공은 '비(非)인기과'로 분류된다. 환자의 생사에 깊숙이 관여하는 특성 때문에 높은 책임감과 숙련된 실력이 요구되는 데 반해 보상은 적고 의료사고와 소송의 위협은 높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과목을 전공하는 것은 비합리적 선택인 셈이다. 생명을 직접 다룬다는 의미에서 '바이탈(vital) 과목'이라고 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이른바 '내외산소'에 대한 의대생과 의사들의 선호도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의대 입학정원을 늘려 비인기 필수분야를 전공하도록 하거나 의사가 부족한 취약지역에 일정기간 근무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여당과 정부가 함께 야심 차게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 공공의료 확충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는 그럴싸한 명분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상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의료취약지와 비인기 필수분야에 의사가 부족한 근본 이유는 그것을 선택하면 '슬기롭지 못한 의사'가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하게 의료수가만 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의료취약지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의료수요도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환자들도 여건만 가능하면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제한해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정부'는 절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
한편 흉부외과나 중증외상과 같은 분야는 의사만 있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의사를 채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있어야 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인력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취약지와 비인기과목의 의사 인력 문제는 우리 의료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 해결하기 어렵다. 의료수가, 전달체계, 병원의 의사인력 고용의 문제, 필수의료 인프라 확충의 문제 등 근본적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시선에서 복잡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반면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이라는 그럴 듯한 숫자를 앞세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이다.
'슬기로운 정부'의 정책 강행에 맞서기 위해 의사들은 기꺼이 '슬기롭지 못한 의사'를 또 자처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포기했고 전공의들은 사직까지 준비하고 있다. '파업'을 한다면서도 정작 분만이나 응급, 중환자 치료와 같은 필수기능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의사들 스스로 알아서 유지한다.
그래서 이미 두 번의 단체행동이 있었지만 의료대란이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 '집단이기주의'와 '밥그릇 싸움'이었다면 얼마든지 더 효율적이고 영악한 방법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우직하고 미련한 길을 택했다. 그 진정성이 국민께도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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