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과 교수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 소개된 지 10년이 지났다.
이 책은 2010년 5월 한국어 번역판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미국에서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저자마저도 그 인기에 놀라워했고 해외에서는 한국에서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는 기사가 나왔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아무래도 한국에서 '정의'와 '공정'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컸다는 게 아닐까 싶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권위주의 정권 속에서 우리 사회는 정의와 공정의 가치는 종종 후순위로 밀리거나 다른 가치에 묻히곤 했기 때문이다.
'촛불민심'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가치가 여전히 공정과 정의에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취임사에서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은 이 말에 설렜고 기대에 부풀었다. 아직도 많은 국민이 이 말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거꾸로 이 말은 종종 문 대통령에게 족쇄가 되곤 한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그랬고, 최근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문제에서도 이 말이 다시 등장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공항 정규직 1700명보다 훨씬 많은 1902명의 보안 검색 요원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바꿔 직접 고용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지고 나면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어렵게 시험을 치러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입사한 현직자들과 공사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8년부터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3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이곳을 들어가려고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은 물론 현직자들은 무슨 죄입니까?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입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건 평등이 아니고 역차별이며 청년들에게 더 큰 불행"이라고도 했다. 이 청원에 동참한 이가 하루 만에 20만명을 넘었다. 그만큼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젊은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비단 인천국제공항공사 건에 대해서만 문제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청원인은 한국도로공사, 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등 그동안 진행됐던 공기업의 비정규직화로 인해 오히려 취업 문이 좁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취준생들의 불만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평등'을 기계적으로만 적용하다 보니 오히려 정의로움에서 벗어난 결과를 낳았던 것은 아닐까.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비교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의 직고용이 그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차별에 있다면 해법은 차별을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직고용이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병 중 하나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만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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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정규직화된 이들은 강성 노조를 조직해 그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정규직에 대한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토록 문 대통령이 원하던 정의로움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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