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독서] 한국은 아직 진정한 혁명을 경험하지 않았다
68혁명 獨 과거사 청산…전공투 실패 日 청산 못해
독일 68혁명 뒤 새로운 세대 등장으로 완전히 변화
68세대 없던 한국, 86세대가 정치적 민주화 그쳐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다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두 나라는 아예 무비자 입국을 중단하면서 서로 봉쇄하고 있다. 일본은 왜 독일처럼 과거사를 청산할 수 없는 것일까.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 따르면 유럽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일본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전공투) 운동의 실패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68혁명은 독일 과거사 청산의 원동력이 됐다. 독일 과거사 청산의 상징적 인물은 서독의 4대 총리 빌리 브란트(1913~1992)다. 브란트는 68혁명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69년 서독 최초의 사회민주당 출신 총리가 됐다. 그가 1970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리는 사진은 독일의 과거사 청산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았다.
브란트의 전임자는 기독교민주당(CDU) 출신인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1904~1988)다. 키징거는 젊은 시절 나치 당원이었다. 당시까지 독일도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1966년 키징거가 취임할 당시 '양철북'의 소설가 귄터 그라스(1927~2015)는 일간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에 나치 당원이 어떻게 총리가 될 수 있느냐며 사임하라고 공개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김 교수는 68혁명에 이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독일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68세대는 독일을 '과거 청산의 나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 치중하던 성장국가를 사회적 분배 중시 복지국가로 변모시켰다고 주장한다. 단적인 예가 브란트 정부 당시 도입한 '바푀그(BAfoG)'다.
바푀그는 대학생들에게 주는 생활비다. 브란트는 선거기간 중 '교육사회(Bildungsgesellschaft)'라는 구호 아래 모든 독일인에게 수준 높은 교육이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그는 총리가 된 뒤 대학생들이 부담 없이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공약을 실천했다.
저자는 독일 68혁명의 성과와 유산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68혁명과 같은 제대로 된 혁명이 없어 오늘날 한국 사회가 불행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저자가 지난해 10월과 11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방송한 강연 '독일의 68과 한국의 86',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녹취해 재구성한 글이다. 김 교수는 최대한 방송 내용을 살리되 설명이 좀 더 필요한 부분은 보충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특히 그라스의 작품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독일에 있었다.
68혁명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모토로 하는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저자는 68혁명이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영향을 주고 받았고 68혁명의 기운이 일본의 전공투까지 이어졌지만 한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68혁명의 결정적 동력을 제공한 것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 시위였다. 하지만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 있던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한 유일한 국가(대만도 지상군을 파병했지만 20명에 불과했다)였다.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 셈이다.
저자는 68혁명의 부재로 인권 감수성 부족, 성(性)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 권위주의, 자기착취, 소외, 뒤늦은 여성해방 운동 등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노출됐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좌우 논리의 색안경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구도는 좌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기형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거짓된 언어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있다'가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큰 거짓말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한국을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 사회'라고 규정한다.
보수의 첫 번째 특징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면 '빨갱이'라고 공격당한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는 민족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백범 김구 선생은 훌륭한 보수주의자였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의 보수 세력이 되레 민족을 경시하고 외세에 붙어 자기 이익만 꾀하는 무리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진보 세력에 대해 보수 언론이 진보라고 불러주니까 진보인 척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한국에서 선거에 나온다면 빨갱이로 공격당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독일에서 가장 우파적 정당인 CDU가 한국에서 가장 좌파적 정당보다 더 좌파적이라는 것이다. 또 문재인 정부가 취하는 노동·경제·재벌·복지 정책도 국제 기준으로 보면 진보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고 꼬집는다.
68세대가 없었던 한국에서는 86세대가 68세대를 대신하고 있다. 저자는 86세대가 이룬 민주화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치적 민주화에 그쳤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한다. 86세대는 군사독재 타도라는 지상과제로 태생적 한계가 있었고 이에 사회·경제·문화적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판에 86세대가 정치 부문에서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 사회가 바뀌는 데 정권 교체만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아예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독일 통일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가장 오해하는 표현이 '흡수통일'이라고 지적한다. 독일 통일은 되레 동독 혁명에서 시작됐으며 한반도에서도 통일보다 남북간 평화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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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 지음/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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