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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계급장 떼고' 소통의 공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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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년기획 - 세대공존, 함께 만드는 사회]
<3>밀레니얼과 소통하는 법

개인의 정체성 숨기고
온라인 닉네임 대화 2030
스스럼없이 자연스런 소통

나이·계급 앞세운 기성세대
"소통했다" 생각했지만
"연설했다" 여기는 2030

'익명'에 수평적 소통 익숙한
밀레니얼 문화 이해해야
진솔한 소통 원활하게


'꼰대 계급장 떼고' 소통의 공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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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원하지 않는 곳에 발령 나도 받아들였고, 원치 않는 직무라도 묵묵히 일했어. 그런데 내가 자초한 일이란 게 더 짜증나…."(삼성물산 직원 A씨)

Re:"회사라는 데가 다 그런 거 같음. 마음을 계속 비워봐."(이마트 직원 B씨의 답글)


"중소기업에 다니는데 회사가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 안 한대. 그래도 되는 거야?"(중소기업 직원 C씨)

Re:"회사에서 안 한다고 하면 방법 없지."(제약회사 직원 D씨의 답글)

Re:Re:"와 그런 회사 아직도 많네. 지금 멘붕임."(C씨의 재답글)

익명으로 운영되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매일 이런 글이 쏟아진다. 언뜻 보면 서로 잘 아는 사이같이 대화한다. 존댓말보다는 반발이 더 많다. 모르는 사이인 만큼 더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은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반말'을 툭툭 던진다. 당연히 '익명'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익명 대화는 진솔한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한 것은 '동질감' 때문이다. 특정 업계 혹은 넓게 봐서 '직장인'이란 공통분모만 있으면 소통의 최소 조건은 충족된다.


위 따옴표

'익명'을 알면 '소통원리'도 보인다


'익명에 숨어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당연하고 별 의미 없는 말이라 치부해버리면 그 안에 숨은 젊은 세대의 소통 원리를 놓치게 된다. 소위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2030 젊은 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온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 학창시절부터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 넘게 익명에 기반한 소통을 해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터넷에 댓글을 달았고 게시판에 글을 써왔다. 이들을 대변하는 것은 단 하나, 인터넷 닉네임뿐이다. 최근 이용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블라인드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도 플랫폼만 바뀌었을 뿐 익명이라는 전제는 변하지 않았다.


물론 과거에도 익명 형태의 의사표현은 있었다. 그러나 투서나 고발 같은 형태였지 '소통'에 쓰인 것은 아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익명이 갖는 의미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공동체 속에 있었죠. 그런데 온라인 익명 소통 공간이 마련되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의식과 지향점을 드러낼 공간이 생겼습니다. 나이ㆍ성별ㆍ직업ㆍ학력 등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시ㆍ망각하고 '인간적 정체성'으로만 상호작용하게 된 겁니다."

송 교수 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체성'이다. 익명 소통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배경을 배제한 채 이뤄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탈권위'로 이어진다. 익명의 공간에서는 상대방이 대통령이든 기업 회장이든 예외 없이 1명의 닉네임일 뿐이다. 이처럼 '탈권위 소통'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기성세대가 가진 '공개된 소통, 권위에 기반한 소통'과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익명'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탈권위'라는 내용이다.


위 따옴표

"라떼는(나때는) 말이야~
권위적 소통방식에 거부감"


지난해 한 공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불꽃남자(31)' 이야기. 시쳇말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 취직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말로만 듣던 '나 때는~'을 직접 경험하게 됐다. "'나 때는 이렇게 일했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며 소통을 가장한 핀잔을 주는데, 과거 사고방식에 묻혀 사는 기성세대가 너무 많아요. 변화를 지향해야 함에도 자신이 했던 길을 그대로 걸어오라는 식이죠. 요즘 젊은이들은 편하다는 편협한 사고방식마저 보여요." 한참 불만을 토로한 그는 마지막에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기성세대들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요. 못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


또 다른 사연. 카드회사 영업직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마포캣대디(33)'도 사내 선배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대화를 하면 불편하죠. 소통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차이를 좁히거나 더욱 합리적 방향으로 대화를 이끄는 거잖아요. 어른들은 가르치려고 하거나 내가 맞으니 따라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게 빠른 의사결정 방식일지는 몰라도 '바르고 정확한' 처리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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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들은 항변한다. "우리가 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효율적 의사결정을 위한 방식"이라고, "다 너희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듣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말만 많이 하려고 하고 자신의 경험이 진리인 줄로 착각하는데 그건 소통이 아니다." 5년 차 직장인 '공항남(34)'의 거센 반박이다.


이 상황 역시 대충 보면 '내용 혹은 말하는 방식에 대한 선호도ㆍ습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 정도로 파악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기성세대들을 향해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니까' 싫어하는 것이라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그게 아니다. 2030도 충고ㆍ교육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권위'에 바탕을 둔, 말 그대로 충고와 교육일 뿐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다시 '익명 소통'을 상기해보자. 기성세대들은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해왔다. 상대방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직급이 위인지 아래인지, 돈이 많은지 적은지 등 많은 정보가 소통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다보니 '높은 지위 혹은 많은 나이'의 사람은 나름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낮은 지위 혹은 어린 사람은 이를 소통이라기보다는 교육이나 지시, 명령, 충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상급자는 하급자와 술을 마시며 '실컷 소통했다'고 생각하지만, 하급자는 '연설을 들었다'고 느끼는 식이다. 2030이 생각하는 소통이란 익명소통의 장점에서 알 수 있듯 '탈권위'가 바탕이 돼야 가능한 것이다.


위 따옴표

"조언이 싫다는 게 아니라고요…"


7년 차 중소기업 직장인 '성실남(33)'은 "예전보다는 기성세대와 소통이 잘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며 "점점 회사생활을 하면서 기성세대와 공감대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나이를 먹어가니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충분히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너도 나이를 먹으면 이해하겠지"라는 생각은 지금 이뤄져야 할 소통을 무시하게 만든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같은 소통의 부재를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소통하기 더 어려운 시대가 온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해법은 '익명성'에 대한 이해에 있다. 임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익명 소통은 수평적인 대화, 계급이 의미를 갖지 않는 소통을 의미하죠. 속된 말로 '계급장 떼고 이야기하자'와 비슷합니다.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만이 밀레니얼과의 소통도 가능해질 거예요." 젊은 세대가 그간 온라인 공간에서 해왔던 소통방식을 오프라인으로 끄집어내 이를 이해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숙제가 됐다.


요즘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낮춰 부르는 '꼰대'라는 말은 196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원래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에 불과했다.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던 이 단어는 60년이 지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가 하면, BBC처럼 영향력 있는 외국 매체에서 꼰대란 단어를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와의 소통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청년들과의 소통을 포기하는 것은 곧 조직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들이 나이를 먹기만 기다리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오늘도 자신의 가족, 이웃, 직장상사에게 침묵으로 묻는다. "꼰대세요?"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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