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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통상에서 '25'가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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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통상에서 '25'가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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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난해부터 국가 안보 위협을 근거로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해, 그리고 중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계속 25%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이쯤 되면 한 번쯤은 '25'라는 숫자에 의문을 가져볼 법하다.


관세율 25%는 1960년대 미국이 유럽 국가와 닭고기를 둘러싼 무역 전쟁을 벌일 당시 부과한 '치킨 관세(Chicken Tax)'에서 유례를 찾을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저렴한 미국산 닭고기에 대해 수입 제한 조치를 하자 미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산 픽업트럭에 25%의 관세를 매겼고, 이 관세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통상 분야에서 25는 '보호' '보복' '징벌적 관세' 등을 연상케 하는 상징적인 숫자가 됐다.

2020년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 25라는 숫자가 통상의 역사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은 세계무역기구(WTO) 창설 25주년인데, 기념을 해도 모자랄 판에 WTO의 최대 위기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출범한 도하개발라운드(DDA) 협상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WTO가 주도하는 다자 무역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WTO는 국가 간 통상 분쟁 발생 시 국가의 크기와 빈부 격차에 구애받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비교적 공정한 중재 기능만으로도 그 의미가 컸다.


문제는 이렇게 WTO를 힘겹게 지탱해온 동력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다음 달 10일이면 WTO 상소기구 7명의 위원 중 1명만 남고 임기가 끝나는데, 새 위원이 채워지지 않는 한 상소기구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다. 2심제로 운영되는 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상소 기능의 마비는 1심 패널 절차의 영향력은 물론 궁극적으로 WTO의 역할 자체가 약화됨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무역 질서는 미국의 리더십을 주축으로 다자 무역 체제를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돼왔다. 이러한 안정감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WTO가 창설된 직후다. 1990년 중반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무역의 대상과 수단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운 무역 규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국제사회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결정적으로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 의견 대립이 다자 간 합의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다. 때마침 세계화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이 확산하면서 반(反)세계화의 도마 위에 오른 WTO 각료회의가 저지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WTO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많은 국가가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지켜내기 위해 지역 무역협정을 선택했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0개가 넘는 지역 무역협정이 발효 중이다. 그리고 2017년부터 미국이 WTO 개혁을 주장하며 상소기구 신임 위원 임명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져 지역 무역협정에 더욱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거대 경제권이 포함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 잇달아 타결 또는 발효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등 11개국이 참여한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발효됐고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 무역협정(USMCA)이 서명됐으며, 이달 초에는 한ㆍ중ㆍ일 3국을 포함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 타결이 선언됐다.


결국 2020년부터는 지역별, 분야별 무역협정을 기반으로 파편화, 다층화된 글로벌 통상 질서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쇠약해진 WTO의 다자 무역 체제를 외면하기보다는 분쟁 해결 절차처럼 반드시 필요한 기능은 살리고 1995년에 멈춰 있는 시계를 미래에 맞춰 개혁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미ㆍ중 간 갈등으로 개혁에 대한 합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견 국가들의 연대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인데, 다자 무역 체제의 최대 수혜국인 한국이 WTO 개혁의 적임자로 나설 만하다. 내년에는 한국 통상의 위상 제고와 함께 WTO 역사에서 25라는 숫자가 개혁과 변화의 상징으로 기록되도록 우리가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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