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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다이아몬드와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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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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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환영이 다시 나타났군요. 그리 놀랄 일은 아니죠. 달이 차오르자 당신은 불현듯 전화를 했을 뿐이겠죠. 나는 여기에 앉아 전화기를 들고 한때 익숙했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건가요? 중서부 어디쯤 공중전화 박스인가요?'


가수 조안 바에즈가 1975년에 발표한 노래 제목이다. '다이아몬드와 녹(Diamonds & Rust)'. 같은 제목으로 묶은 앨범도 있다. 한때 사랑한 남자가 걸어온 전화 한 통. 과거는 환영처럼 떠올라 눈앞에서 구체화되고 추억은 선명해진다. 남자는 조안의 전 남편 데이비드 해리스라고도 하고 젊은 날의 연인 밥 딜런이라고도 한다. 끝나버린 사랑은 폐허와도 같다. 사랑의 주인은 때로 나그네가 되어 폐허를 돌아본다. 그 감정은 대충 이런 것이다.

"그 사랑은 끝났다. 그리고 누란에서 옛 여자 미라가 발견된 것은 다시 얼마가 지나서였다. 그 미라를 덮고 있는 붉은 비단 조각에는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는 그 글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윤후명의 소설 '누란의 사랑' 중)


조안은 밥과의 사랑이 끝난 지 10년도 더 지난 뒤에 '다이아몬드와 녹'을 불렀다. 가사에 밥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밥이어야 가사도 곡도 살아난다. 밥은 그린위치의 어느 호텔에서 그녀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었어야 한다. 조안은 밥에게 커프스단추 한 쌍을 선물했음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노래한다. 추억은 다이아몬드와 녹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숯은 다이아몬드로 변하고 번쩍이던 쇠는 녹슬어 버린다고.


나는 조안의 목소리 너머로 울리는 벨소리를 상상한다. 별들이 지금보다 열 배는 밝았을 시절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다이얼을 돌린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10원짜리 동전을 절그럭거리며, 골목 저 끝까지 걸어가 백열등 아래 반들거리는 주황색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가게마다 쪽문을 걸어 잠근 골목은 고요하였고, 나는 끝없이 망설였던 것이다. 수화기 저편에서 그녀도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으며.

전화가 아니었다면 70년대의 사랑이 가능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리라. 편지를 썼을 것이고, 사랑은 더 느리고 은근하되 끈질겼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는 사랑을 좀 더 짜릿하고 가슴 떨리는 무엇으로 만들어 주었다. 저편의 목소리는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그려내는 객관상관물이 되어 내 가슴 속에 선명해지지 않았는가. 전화는 전기나 물리학의 범주를 뛰어넘는 신화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전화를 만든 사람은 1922년 오늘 세상을 떠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토니오 메우치라는 사람이 벨보다 앞서 1854년에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메우치는 너무나 가난해서 특허 등록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임시특허를 등록했다. 벨은 1876년 미국 특허청에 정식 특허를 등록했다. 메우치는 소송을 걸었지만 승소를 눈앞에 두고 심장마비로 생애를 마쳤다.


미국 하원은 2002년 6월6일 표결을 통해 메우치가 발명해 1860년 뉴욕에서 시연한 '텔레트로포노'가 최초의 전화기이며 벨은 메우치의 자료를 입수해 16년 뒤 특허를 획득했음을 인정했다. 하원결의안에는 '19세기 이탈리아계 미국인 발명가 안토니오 메우치의 삶과 성취, 그리고 전화기 발명에서의 그의 업적을 미 하원이 기리는 뜻을 표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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