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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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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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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가정집의 응접실은 대청마루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마당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그 방은 유리문을 단 책장과 앉은뱅이책상, 두툼한 방석이 지켰다. 책장에는 '삼국지(연의)'나 '대망' 같은 소설과 외국어 서적 몇 권이 꽂혔다. 삼국지와 대망 같은 책을 읽어 인생을 공부한다던 시절이다. 일류 소설가들이 삼국지 번역(또는 평역)을 낼 때마다 신문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인생뿐만 아니라 군사,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무궁무진 담긴 고전." 대망도 다르지 않다. "인간문제의 디파트먼트요, 치국경세, 입신의 수완인 장대한 '인간치세의 경략서'" "기업인과 직장인의 필독서".


흔히 대망을 일본의 삼국지라고 했다.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난세에 등장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역사란 3진법인가. 삼국지에는 천하의 운명을 가른 3대 대전이 나오고, 대망에는 전국 시대의 3대 영웅이 등장한다. 곧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이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삼국지의 3대 대전은 그때마다 역사의 변곡점이 된다. 관도대전에서 이긴 조조는 하북을 평정해 천하를 경영할 바탕을 다진다. 적벽대전은 촉오동맹의 승리로 천하삼분을 현실화하며 이릉대전은 촉한의 쇠퇴로 이어진다.

대망은 인간학이라고도 한다. 난세 속에서 사람을 다스리고 나아가서 세상을 평정하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오다에서 도요토미, 도쿠가와로 이어지는 정반합의 이치는 두견이의 비유에서 선명해진다. 새장 속의 두견이가 울지 않을 때 오다는 울지 않는 새는 베어버린다는 냉혹한 결단을, 도요토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울게 한다는 권모술수와 집요함을, 도쿠가와는 두견이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끈기와 인내를 표상으로 삼는다. 그러니 역사는 곧 사람의 일이며 마음의 사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피가 튀는 삼국지의 3대 대전도 장막을 걷고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역사(人間歷史)다.


큰 흐름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관도대전은 가장 중요한 싸움일 수 있다. 원소는 비록 서출이나 명문가의 후손이었고 하북의 비옥한 땅을 차지해 후한 말기의 패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관도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가장 압도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용모가 수려했으며, 말과 행동에서는 왕의 위엄이 느껴졌다고 하니 환관 가문 출신인 조조가 넘기 어려운 벽이었으리라. 그러나 뛰어난 인재를 얻고도 측근의 주장에만 귀 기울이고 실패의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하는 그의 처신은 궁극적으로 실패로 귀결됐다. 원소가 202년 오늘 숨을 거둔 다음 채 5년이 지나기 전에 그의 세력은 먼지처럼 소멸하지 않았는가.


하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이르기를 "겉으로는 관대했지만 속으로는 질시하고, 모략을 좋아하였으며, 결단력이 없고, 인재가 있어도 등용하지 않고, 예의를 버리고 편애를 숭상했다"고 했다. 연의를 쓴 나관중은 원소를 무능한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했다. 반면 '후한서'를 쓴 범엽은 "호협한 기백으로 따르는 무리를 얻었으며, 마침내는 웅패의 뜻을 마음에 품었다"고 했다. 다만 덧붙이기를 "자긍심이 강해 오만하며 스스로의 기량을 과신했으므로 (다른 사람의 간언을 받아들이며) 선을 행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에 관도에서 패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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