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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풀리지 않는 협상의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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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하나를 두고 두 아이가 서로 갖겠다고 싸운다.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나눠 주니, 아이들 모두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알고 보니 한 아이는 오렌지를 먹고 싶었고, 다른 아이는 오렌지의 껍질을 원했던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Harvard Law School)에서 협상 이론을 가르쳤던 로저 피셔(Roger Fisher) 교수의 저서에 언급된 사례다. 협상은 맹목적으로 더 갖기 위한 싸움이 아니며, 각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오렌지의 "껍질"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렌지를 찾는 이유는 물론 껍질이 아니라 그 과육을 먹기 위해서다. 대개 인간의 욕구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더 큰 경제적 혜택과 더 나은 환경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용한 자원과 가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고 협상도 필요하다. 위 사례는 협상에 임할 때 점검해야 할 것 중 하나를 지적한 것이지, 모든 갈등의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첨예한 의견 대립 상황에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서 나눈 대화의 양은 협상의 성과와 만족도에 비례할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서울의 한 대형 쇼핑몰 건립을 둘러싼 논쟁은 당사자 간 많은 대화가 있었음에도 시간만 흐르고 결론을 내지 못하는 대표적 갈등 사례로 꼽힌다. 서울시는 6년 전 상암동 부지를 한 대기업에 매각했다. 그러나 매각 당사자였던 서울시가 건축 허가를 미루면서, 땅은 팔고 정작 그 땅 위에 건축은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6년째 지속되고 있다. 약 2.4km 떨어져 있는 재래시장 등에서 반대가 있기 때문에 상생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계약 시 부지 매입 목적이 대형 쇼핑몰 건립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당시에도 해당 재래시장은 지금의 그 자리에 있었다. 즉 상생을 위해서라면 애초에 서울시가 부지 매각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현재 쇼핑몰 건축을 허가해달라는 측은 지역 내 고용 창출 효과는 물론, 유동 인구 증가와 상권 발달로 상인들도 혜택을 볼 것이라 주장하며, 반대측은 쇼핑몰이 들어서면 기존의 상권이 결국 다 죽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잡초만 무성한 채 버려져 있는 부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오랜 시간 협상을 조정해왔다고 하지만, 재래시장 방문객과 잠재적 소비자에 대한 수요 분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쇼핑몰 건립이 유동 인구와 주변 상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기관의 연구도 제대로 수행된 것이 있는지 공개된 바 없다.


사회 곳곳에서 감정 싸움만 반복하며 평행선처럼 좁혀지지 않는 갈등을 볼 수 있다. 물론 갈등의 조정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을 교감하며 공감대를 찾기 위한 대화는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실제 협상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상호 신뢰 같은 정서적 요인이 협상을 타결시키는 변수의 약 55%를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분석에 근거한 논리적 공방이 생략되고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 자료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면, 그 협상은 결국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허무한 싸움이 되기 쉽다. 협상에서 상호 견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기반한 논쟁과 이를 위한 준비 절차도 필요하다. 또 그러한 과정이 협상 결과에 대한 수용과 이행 수준을 높이는 방도이기도 하다.


정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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