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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거주한 '심우장' 사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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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거주한 '심우장' 사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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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만해 한용운(1879년∼1944년)이 1933년에 지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거주한 집인 '성북구 심우장(尋牛莊)'이 사적으로 등록된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유산의 문화재 지정과 등록을 추진하는 문화재청은 서울시 기념물 제7호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2일 전했다.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소는 불교 수행에서 '잃어버린 나'를 빗댄 말이다. 심우장은 전형적인 근대기 도시 한옥이다. 남향이 아닌 동북향으로 지었다. 한용운이 국권을 빼앗은 조선총독부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햇볕이 덜 드는 방향을 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한용운은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가운데 한 명으로서 기미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1905년에 설악산 백담사에서 정식으로 출가해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장했다. 3·1운동 이후에는 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해 정교분리를 요구하고, 항일단체인 신간회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한용운은 1933년에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 벽산 스님으로부터 성북구 땅을 받았다. 손수 목공 일을 해 세운 심우장은 민족지사와 문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1937년에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일송 김동삼이 순국하자 유해를 모셔와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심우장은 현재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인 팔작지붕 기와집 한 채가 남아 있다. 1952년 매각 당시 기록에 따르면 16㎡ 면적의 또 다른 건물이 있었다. 1962년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오늘날 존재하는 사랑채 앞쪽과 옆쪽 툇마루는 과거에 없었다. 기단부 아래에 설치한 석재도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심우장이 사적으로 지정되면 등록문화재인 '구리 한용운 묘소'와 함께 독립정신을 기리는 뜻 깊은 장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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