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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믿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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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별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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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일까. 인력의 수준, 신속함, 효율적인 시스템 마련 등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올해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 참석한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부 장관과 티모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모두 '신뢰'를 덕목으로 꼽았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소방수 역할을 했었다. 그들이 소개했던 일화들을 전해볼까 한다.
폴슨 전 장관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일하고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폴슨 전 장관을 '나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라고 불렀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부시 전 대통령이 WSJ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나를 경제 전담가로서 신뢰한다는 얘기였다"며 "누군가의 신뢰가 어려운 일을 할 때에는 큰 용기가 된다"고 말했다.

가이트너 전 장관은 금융정책을 짤 때 가장 고민됐던 부분이 의회의 반응이었다고 고백했다. 대형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정부자금을 지원해야 했는데, 모기지론 때문에 집을 잃게 생긴 서민들을 살리지 않고 왜 대형은행들에게만 자금을 쏟아붓는지 의회는 연일 비판했다. 가이트너 전 장관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금융자금 지원 계획을 설명하면서 예상되는 의회의 반응을 함께 언급했는데, 대통령은 '의회를 설득하는 일은 내가 할 일이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다. 당신은 오로지 최고의 금융정책이 무엇인지만 생각해서 내게 가져오면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상당히 고마웠다"고 소개했다.

전직 대통령, 전 정권과 일했던 정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전직 대통령을 칭찬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금융위기를 겪은 해결사들이면 더더욱 그럴 만하다. 자연스럽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만약 이번 정권이었다면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현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혹은 농담이 이어질 것 같아 귀를 기울였다. 청중들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들을 준비를 하며 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폴슨 전 장관은 "당신들이 내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건 여러분들이 원하는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면서도 "어떤 정부, 어떤 철학을 가진 정권이든 간에 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약간의 농담으로 시작된 질문에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청중들은 조용해졌다.

폴슨 전 장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런 생각들, 그러니까 정치적 환경에 따라 위기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의심하고 상상하는 것이 매우 끔찍하다(Horrible)고 생각한다"며 정치 성향에 따라 분열된 민심을 비판했다. 그는 "지금은 웃으면서 말을 할 수 있지만,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였다"며 "어떤 위기든 발생하면 미국인들은 함께 힘을 모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전직 재무장관으로서 말의 무거움을 누구보다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언 같았다.

미국도 별세계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편을 갈라 시끄럽게 싸운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벌써부터 탄핵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ㆍ경제 철학이 달라도 위기가 생기면 뭉칠 것이라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면 싸움의 질은 좀 더 다르지 않을까. '믿어주는 것', 어쩌면 기본 중의 기본일 수 있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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