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규 한국체육대 교수.

안용규 한국체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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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계 스포츠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자주 한계와 극복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기린아 이영하가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제12회 동계올림픽 5000m 경기에 나가 11위를 기록했을 때는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느꼈다.


"아, 세계 정상이 결코 멀지 않구나!"
"이게 동계스포츠 후진국의 한계인가?"

이영하가 인스브루크에 갔을 때 나는 하이틴이었고, 체육인으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며 그렇기에 더욱 우리 스포츠의 미래가 궁금했다. 내가 보기에 이영하의 올림픽 11위는 우리 동계 스포츠가 세계 수준과 경쟁해 이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주는 선고와도 같았다.


이영하가 누구인가. 그는 같은 해 1월 17~18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 빙상 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 우리 빙상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제패한 기린아다. 훗날 1980년 미국의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제13회 올림픽에서 5관왕에 오르는 미국의 빙상 영웅 에릭 하이든을 이겼다.

주니어 레벨에서 이영하가 전설을 쓴 이후 우리에게 빙상 금메달은 쇼트트랙에서만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올챙이가 개구리 되듯, 번데기가 나방 되듯 놀라운 일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빙속 3총사',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나의 제자들이다.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이들을 사랑하고 언제나 자랑스러워하며 스승을 자처하는 나에게도 이들이 목에 걸고 돌아온 금메달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제자들이 다르게 보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오직 그들을 지도한 전명규 교수만이 기적 아닌 기적을 확신했다. 아니, 그는 밴쿠버올림픽에서 '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가 예고한 큰일은, 그가 낳아 기른 것과 다름없는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의 엄청난 승리였다.


이미 놀라운 일을 해낸 동갑내기들은 이제 조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대비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그들에게 엄청난 도전일 것이다. 밴쿠버에서 그들은 무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슈퍼스타들이다. 경쟁자들은 칼을 갈고, 국민의 기대는 천근만근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자들이 얼마나 강한 선수들인지 잘 안다. 털털해 보이지만 정이 많고 섬세하며, 빙판에서만은 '강심장'이 뜨겁게 고동치는 이상화와 '악바리'이자 명랑 소년 모태범, 그리고 웬만한 일에는 긴장하거나 흥분할 줄 모르는 승부사 이승훈! 그들은 준비된 선수들이다.


대회 개막일이 하루하루 다가옴을 헤아리면서 이들의 마음속이 어떠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평창올림픽에서도 '큰 일'을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단지 메달이나 순위, 기록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 성취다. 도전과 응전,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대 서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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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제자들에게 조언한다. 평창올림픽을 마음껏 즐겨 달라고. 내일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내하며 달려왔으니 강심장은 강심장답게, 악바리는 악바리답게, 승부사는 승부사답게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며, 또한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리라고. 겨울 캠퍼스에서 자랑스러운 제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안용규 한국체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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