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수요일/윤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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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배낭을 바로 멘다
 여의도역에서는 어깨에 대해 쓸 것이고
 그가 멀어지는 스크린도어에 대해 쓸 것이다
 맑은 날들일 것이다
 이사가 잦을 것이고
 플라타너스는 또 가게들을 가리고
 여름에 그 나무는
 찢어진 입을 가진 천사들 같을 것이다
 짧은 볕이라면
 간혹 그대의 멈춰 있는 얼굴 안에
 손을 넣어 보고 싶어질 것이다
 횡단보도가 많고
 영등포 가게 상가에서는
 혼자 우는 그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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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요일"일까? 모르겠다. 왜 "그는 배낭을 바로" 메고 있는 것일까? 어딘가로 떠난다는 뜻일까? 이제 막 떠나려 한다는 의미일까? "바로"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어쩌면 여행 중이거나 이미 '떠나왔다'는 말이지 싶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왜 그가 "여의도역에서는 어깨에 대해 쓸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멀어지는 스크린도어"는 대체 어떤 상태를 두고 적은 것일까? 그리고 또, 또… 왜 하필이면 "영등포 가게 상가에서"일까?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모른다고 말하는 걸까? 시를 읽고 있는데 말이다. 시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이 아니다. 시인은 다만 글자들을 제시할 뿐이다. 그 글자들을 허물고 다시 조립하는 일은 독자가 할 몫이다. 예컨대 "그가 멀어지는 스크린도어"는 '스크린도어로부터 멀어지는 그'를 '스크린도어'를 기준으로 삼아 적은 것이다. 그리고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독자가 스스로 어떤 세계 하나를 이루는 일이다. 한번 떠올려 보라. "그대"와 헤어지고 두어 달쯤 지난 뒤 어느 저녁에 고단한 어깨를 주무르며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여의도역에 서 있는 자신을, 그리고 결국에는 "횡단보도가 많"은 "영등포 가게 상가" 앞에서 "혼자" 울고 있는 자신을, 그것도 "수요일"에. 아, 수요일이 이렇게도 슬플 줄이야.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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