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시간이 없다"…恨 못풀고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 8人
올해 마지막 수요시위, 올해 세상 뜬 피해 할머니 추모
한일 양국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합의를 맺은 12·28 합의 2년을 하루 앞둔 27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15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올해 운명한 국내외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8명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이제 남은 생존자는 32명이 됐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도 돌아가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2015 한일합의’ 무효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27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이자 1315번째 수요시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2017년 세상을 떠난 8분의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혔음에도, 끝까지 진실과 정의를 지키려던 할머니들의 일생을 되짚고 그들의 용기를 이어받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정부등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총 239명.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 역사의 산증인은 32명만이 남았다. 생존자의 평균연령은 90.6세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 잊어서도, 잊혀서도 안 될 8분의 할머니들의 생을 돌아본다.
◇조국을 잊지 못한 故 박차순 할머니(향년 94세)
1923년 태어난 박차순 할머니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술통에서 술을 떠 파는 점원생활을 하던 할머니는 갑작스레 중국으로 끌려가 호남성, 남경 등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해방 이후 일본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쳤지만, 차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에서 평생을 지냈다. 그럼에도 박 할머니는 우리말을 계속 사용했고, ‘아리랑’과 ‘두만강’ 노래를 잊지 않았다. “조선은 괜찮냐?”고 묻던 박 할머니는 건강 악화로 올 1월18일 눈을 감았다.
◇“더는 같은 일 없기를” 故 이순덕 할머니(향년 100세)
전북 김제가 고향인 이순덕 할머니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에 데려다 주겠다는 말에 속아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정기 수요시위 참석, 관부재판 참석 등 위안부 피해를 생생히 외부에 알렸다. 하지만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 4월4일 생을 달리 했다.
◇불우했지만 꿋꿋했던 故 김군자 할머니(향년 92세)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군자 할머니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동생들과도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 17세가 되던 해, 일본군에 끌려간 김 할머니는 1년여를 모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백두산을 지나고, 두만강을 건넌 후에야 조국이 해방된 사실을 알았다는 김 할머니. 위안부 피해 문제를 알리기 위한 해외 캠페인과 집회에 열을 다해 참여하며 본인이 겪은 참상을 전달하던 김 할머니는 7월23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에서 참상 알린 故 하상숙 할머니(향년 91세)
충남 서산이 고향인 하상숙 할머니는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7세 되던 해에 중국 무한지역으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에서 살던 할머니는 2003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국에 있던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여하는 한편, 평생을 일본군 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해 바쳤다. 8월28일 건강 악화로 영면에 들었다.
◇일본이 바꿔놓은 삶…故 이상희 할머니(향년 91세)
이상희 할머니는 17세 때 혼자 집에 있다가 일본 순사에게 강압적으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당했다. 일본을 거쳐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니며 모진 고통을 겪었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과 동생·오빠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였다. 파출부, 껌팔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힘든 삶을 버텨온 이 할머니는 11월1일 잠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 평생 고통 이겨낸 故 이기정 할머니(향년 93세)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이기정 할머니는 19세 즈음에 일본 군인의 옷을 세탁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서울의 직업소개소에 속아 강제 동원됐다. 싱가포르와 미얀마의 군 전용 위안소에서 모진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이 할머니는 해방 후 군함을 타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후 결혼을 했지만 일본군 성노예 피해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고향 당진의 작은 집에 혼자 살던 이 할머니는 11월11일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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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직접 싸운 故 송신도 할머니(향년 96세)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에 살면서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끝까지 싸웠다. 17세 때 중국 위안소로 끌려간 뒤 해방 이후 배를 타고 일본에 들어갔다. 1993년 도쿄지법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3년 패소가 확정됐다. 이후 10년간의 재판 기록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지지 않았다’로 제작돼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송 할머니의 호소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12월16일 노환으로 운명했다.
◇기구한 삶 견딘 故 이○○ 할머니(향년 94세)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이 할머니는 고모 댁에 입양돼 경북에서 자랐다. 17세 되던 해 마을 빨래터에서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도착한 곳은 대만의 위안소였다. 끔찍한 성노예 생활을 한 이 할머니는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와 이곳저곳을 떠돌며 식당일, 농사일 등을 거들며 생계를 이었다. 평생을 위안부 피해로 몸부림친 이 할머니는 결국 8월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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