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나를 버릴 수 없어서/박남희
내 몸에서 옷을 버린다
구두를 버린다
머리카락을 버린다
한차례 비가 내리고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여름을 버리고
뒤집힌 우산을 버리고
무너진 담벼락을 버린다
내가 버린 것들이 혹시 나일까 생각하다가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저 혼자 외연을 넓히던 상상력을 버리고
혹시 내가 버린 것들로부터 내가 버려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벽에 걸린 뾰족한 초침의 눈빛을 버리고
그 초침에 찔리고 싶어 하는 시간을 버리고
그 시간 속에 갇혀 있던 조바심을 버리고
그러고도 나를 끝끝내 버릴 수 없어서
어디론가 뻗어 가고 싶어 하는 강 하나 남겨 둔다
그 강의 출렁이는 물살을 버리면
나를 아주 다 버리는 것 같아서,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고유가 지원금 받아도 1인당 30만원 또 준다…18일...
■곽암이 남긴 「심우도(尋牛圖)」의 여덟 번째 화폭은 ‘인우구망(人牛俱忘)’인데, 자신도 소도 모두 잊어버리는 경지로 본래의 맑고 깨끗한 근원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상태다. 물론 이 시를 불교적 맥락에 얹는 일은 무리다. 다만 「심우도」를 먼 배경으로 배치해 놓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고도 나를 끝끝내 버릴 수 없”다는 시인의 심정이 더 절절하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누구나 진짜 자기를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수행자가 아니다. “어디론가 뻗어 가고 싶어 하는 강 하나”씩 가진 보통 사람들이다. 비록 미망(迷妄) 속을 헤매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니 “그 강의 출렁이는 물살”이 어쩌면 진짜 나인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