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a]미국식 성장 모델서 경제 발전 열쇠 찾기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방영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견만리'에 출연해 IMF 외환위기 20주년을 맞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장 교수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1980년대 우리 국민 80%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체감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친지 20년 만인 올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100대 97이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100대 62로 벌어졌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둘러싼 갈등 속에 일자리가 줄고 경제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장 교수는 중산층의 붕괴가 내수 침체와 납세율을 떨어뜨리고, 실업자 증가에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가 20년 전처럼 또 한 번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상위 10%가 부를 독점하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양질의 일자리수와 임금 수준을 높여 중산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골든타임은 6년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경제는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물결이 지배했다.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이 활성화되고 정부가 관장하거나 보조하던 영역들이 차례로 민간에 넘어갔다.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하며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한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이론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 흐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부작용을 노출했다. 세계 경제는 불황과 실업, 그로 인한 빈부격차가 확대됐고 시장개방 압력으로 인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도 극에 달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마저도 실업자 수가 급격히 늘고 양극화가 심해 거리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라는 현실을 장 교수는 방송을 통해 설명했다.
세계 경제는 오랜 침체를 겪으면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도서출판 부키가 출간한 '현실의 경제학'도 이 고민을 주제로 한다. 미국 경제학자 스티븐 코언과 브래드퍼드 들롱이 함께 쓴 이 책은 "과거의 성공과 실패, 즉 역사를 되돌아보는데 해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지난 200년 동안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미국의 발자취를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출발은 '역사 바로알기'. "미국인은 물론 대다수가 '미국 경제는 자유방임시장을 추구해 번영을 이뤘다'고 믿지만 이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며, 미국은 건국 이후 한 번도 시장의 힘에만 경제를 맡긴 사례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으로 일한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 경제 발전의 기초를 설계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연방 정부 주도로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하고 제조업을 육성하는 경제 성장 방식을 택했다. 관세(수출·수입되는 화물에 부과하는 세금)를 높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철도를 건설하는 등의 과정을 정부 주도로 실행한 것이다.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가는 길을 닦아주고, 필요하면 수단도 제공했다. 그러면 기업가들이 이 터전에 뛰어들어 경쟁하고 수익을 내면서 그 안에서 혁신을 이뤄냈다. 물론 국가가 주도한 경제개발 계획이 실패한 사례도 많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론에 입각하거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이면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목표를 달성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대를 거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정책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과 당파 논쟁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했다.
지도자의 뚜렷한 소신도 정부 주도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보수당을 대표하면서도 미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보 진영의 의제들을 적극 수용하고,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국력을 집중했다. 대공황의 혼란 속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와 자본을 창출하고 내수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폈다. 과도한 공채 발행으로 적자가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었으나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펴거나, 경기가 침체하면 다시 돈을 푸는 등 상황에 맞는 조치를 취했다. 그가 추진한 '뉴딜' 정책은 철저한 실용주의에 기초한다. 쓸 만한 정책을 한 가지씩 시도한 뒤 효과가 없으면 버리고, 결과가 좋은 것은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경제 성장이 궤도에 오른 아이젠하워 시대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이 화두였다. 교외 지역을 개발해 주택 보급률을 높이고, 텔레비전과 자동차 등 대량 생산으로 쏟아낸 재화를 국민이 동일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신분과 부의 상승은 '조금 더 가졌거나 조금 나은 것을 가졌을 뿐 모두 똑같은 것을 가진 중산층의 나라 미국'을 만들었다. 이 정부에서는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도 활발했는데 소련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미국도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 주도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와 반도체, 인터넷 기술의 기초가 탄생했다. 이 책은 스티브 잡스나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을 대표하는 첨단 산업의 상징이 민간이 아닌 정부의 지원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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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경제학이 주목하는 미국 경제 성장의 동력은 궁극적으로 '큰 정부'에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충하고 재정지출을 늘려 고용과 사회복지를 강화하려는 경기부양 방식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불황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추구한 경제 성장 모델은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역사를 정확히 되짚어보라. 그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라. 이데올로기나 추상적 이론 대신 정책은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경제 성장의 열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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