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시아경제DB)

(사진=아시아경제DB)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현재의 중국은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전통과 현대적 실리가 맞물린 뛰어난 외교력을 지닌 나라로 평가받지만, 19세기 개항기 때 벌어진 아편전쟁 당시에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영국인들이 내놓은 '스테이크' 접시에도 벌벌 떨며 굴욕적인 난징조약을 체결했던 아픔의 역사 또한 간직하고 있다.


아편전쟁은 중국시장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면 개방된 계기이자 중국인들에겐 역사상 최악의 치욕으로 기억된 전쟁이다. 1840년, 군사기술력에서 한없이 밀려있던 당시 중국 청나라는 영국군에게 일방적으로 연전연패하며 베이징(北京) 코앞에 있는 톈진(天津)까지 몰려온 영국함대에 크게 기가 죽어있었다. 청나라는 결국 영국과 협상을 펴기로 결정하고, 대표단으로 직예총독(直隷總督) 기선(琦善)을 파견했다.

1840년 12월, 기선은 전권을 위임받은 흠차대신으로 당시 톈진 일대 천비(川鼻) 포대 앞에 주둔한 영국군 함대로 찾아갔다. 협상테이블에 앉은 영국군은 무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식사로 스테이크를 내놨다. 나이프와 포크가 놓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본 청나라 사절단은 모두 기겁을 했다. 당시 중국입장에서 생고기를 칼과 창에 찍어서 먹는 것은 매우 야만적이고 사나운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AD

그 모습을 본 영국 대표단 전권위원이었던 찰스 엘리엇은 "당신네 요리가 세계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중국이 요리처럼 대포를 잘 만들었다면 지금 우리는 서로 반대쪽 테이블에 앉아있었을 것"이라면서 중국 사절단을 비웃었다. 공포에 질린 기선과 사절단은 영국측이 원하는대로 협상을 맺고 말았으며, 이때 맺어진 '천비가조약(川鼻假條約)'은 훗날 난징조약의 근간이 됐다. 지난 1997년, 중국이 홍콩반환 기념으로 만든 영화 '아편전쟁'에는 이러한 양자간 대면이 상세히 묘사돼있다.

사실 서양식 스테이크는 중국 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인상을 주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침략자인 서구인들이 피가 떨어지는 스테이크와 붉은색 와인을 마시는 것을 두고 사람의 고기를 먹고 피를 빨아먹는 악마라고 생각했다고 전해지며, 동양권에서는 대부분 서양인들을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여겼다. 이것은 점령지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줬고, 19세기 서양의 식민지 정책에 이용되기도 했다. 오해가 풀리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