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새로운 어머니들이 피어나듯이 재잘대는 봄볕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여름날의 붉은 장미가 저만치 빛을 끌어들인다. 포근한 꽃송이 사이에 민들레 씨앗 하나가 잠들어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잊어버린 채.

 어머니가 전해 주던 말 속에 수만 갈래의 길이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언제나 그 길들은 내 눈에서 눈물 자국으로만 번져 있고, 민들레 씨앗 하나가 내 가슴에도 뒹굴고 있으니, 눈먼 어머니, 민들레 씨앗은 바람에 떠밀려 날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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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봄 햇볕 아래 민들레 씨앗들이 도로 귀퉁이에서 우르르 뭉쳐져 재잘거리고 있다. 서성이고 있다.

[오후 한 詩]어머니 피다/신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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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엄마는 내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엄마는 나 대신 장래 희망란에 판사, 의사, 공무원을 학년이 바뀔 때마다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엄마는 내게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다. 만약 친구와 싸우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기라며 이를 앙다물었다. 나도 주먹을 꼬옥 쥐었다. 엄마는 저 하늘나라에는 옥황상제가 살고 선녀들도 산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데모하는 데는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했다. 수배를 받아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선배와 집에 갔을 때 엄마는 연탄불에 양미리를 구웠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가, 어느 겨울밤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너만 행복하면, 너만 행복하면, 자꾸 그 말만 되풀이했더랬다. 엄마, 그런데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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