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색(山色)이 점점 가을들판을 닮아갑니다. 추수직전의 논밭처럼 색색으로 익어갑니다. 잡목 숲에는 벼, 수수 따위 온갖 곡식의 빛깔이 어룽거립니다. 노릇노릇 알맞게 구워진 빵 같기도 하고, 바삭바삭 잘 튀겨진 과자 같기도 합니다. 스테이크에 비유하자면 '웰던'(well done)입니다. 그 모든 냄새들이 바람에 날려 옵니다.
이런 날이 일 년에 며칠이나 될까요. 이렇게 맛있는 햇볕과 달콤한 바람에는 웬만한 식품보다 더 높은 '칼로리'의 성분이 들어있을 것만 같습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이유도 어쩌면, 가을볕의 당도나 영양가와 무관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 달디 단 햇살 아래 '길 맛'이 좋은 오솔길을 걷고 있습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을, 고샅길입니다. 강물과 나란히 기차가 지나고 자동차들이 다닙니다. 철길 안쪽으로는 자전거길입니다. 예사로운 자전거길이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입니다. 자전거 선수들과 선수들처럼 차려입은 애호가들의 은륜(銀輪)이 바람과 하나가 되어 달리는 길이지요.
길모퉁이를 돌아 오르면, 이분의 생가와 기념관이 보입니다.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중앙선 신원역 근처입니다. 외길인데다가, 안내표지도 충실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요. 큰 길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하리만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골짜기입니다.
작은 굴다리가 대문 구실을 합니다. 거기에 몽양이 나와 있습니다. 실은, 벽화 속 초상이지요. 캐리커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차림새입니다. 야구선수 유니폼을 입고, 한 손에는 야구배트를 들었습니다. 고교생 훈련 캠프 울타리에 학생이 그린 그림이나, 야구동호회 회원모집 현수막의 일러스트를 연상시킵니다.
몽양이 누굽니까? 3.1운동의 실질적인 기획자였습니다. 레닌과 트로츠키, 쑨원과 장제스와 마오쩌둥, 호치민 등 세계의 지도자들과 교류하던 국제적인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광복 후엔 '조선을 이끌어갈 가장 양심적인 지도자'로 손꼽히던 지도자였습니다. 탁월한 웅변가였으며, 불세출의 혁명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왜 야구감독 행색을 하고 서 있을까요? 기념관으로 오르는 비탈길, 나부끼는 몇 개의 깃발 중 하나에 답이 보입니다. '조선 스포-쓰 도장(道場)'. 기념관 옆 작은 체육공원의 이름입니다. 여러 가지 운동 기구들이 놓여있고, 그것들이 몽양과 무슨 관계인지를 설명한 안내판들이 서 있습니다.
몽양은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육상, 수영, 권투, 농구, 야구, 씨름, 택견, 철봉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습니다. 워낙 운동감각이 뛰어난데다, 꾸준히 단련하고 훈련한 결과지요. 여기서 서울까지 단숨에 달려가 모친의 약을 지어왔다는 이야기, 한강 30리를 쉬지 않고 헤엄쳤다는 이야기가 이 고장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몽양은 나라 잃은 백성이 신체까지 부실해서는 참으로 가엾어질 수밖에 없음을 일찍이 깨친 것입니다. 청년들과 함께 뛰고 달리기를 즐기며, 스포츠를 통해 민족정기를 키웠습니다. 피지배민족으로서의 한과 울분을 한껏 분출시키도록, 어떤 자리에서나 체육과 체육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념관에 있는 자료 하나가 그의 신념을 분명히 확인시킵니다. 48세의 맨 몸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1933년도에 나온 '현대철봉운동법'이란 책에 실린 것이지요. 설명이 붙었습니다. '스포-쓰 맨으로의 여운형 선생의 근영(近影). 선생이 철봉운동으로부터 얼마나 큰 효과를 얻으시었나 선생의 서문을 읽어보라.'
아마도 이 글일 것입니다. "…내 생각에 철봉운동은 모든 운동의 기본으로 운동에 뜻 가진 사람은 반드시 철봉운동을 경험해야 할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이 운동에 주의하여 국민체육에 이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신념에 힘을 싣기 위해, 상반신을 벗어부치고 사진을 찍은 것이지요.
몽양의 혁명가 기질은 스포츠에서도 보기 좋게 발휘되었습니다. 유학시절에 야구대표로 뽑혀 등록금을 면제받던 사람이었습니다. YMCA 야구팀을 이끌고 일본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초인적이었지요. 거의 모든 종목에 간여하며, 조선체육회, 올림픽위원회까지 도맡았습니다.
생각건대, 그는 '한 손'의 고독과 절망을 아는 이였습니다. 철봉운동이 생활이었던 사람 아닙니까. 필경, '두 팔'의 평형(平衡)과 조화를 윗길에 놓았을 것입니다. '건국의 이상'도 거기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왼손 오른손의 협력과 신뢰, 그 믿음으로 '좌우(左右)합작'을 꿈꾸었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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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에서, 무엇보다 소중히 새겨야 할 것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사랑과 용기입니다. 베를린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지요.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 사진 속 '일장기'를 지워버린 것도 바로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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