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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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를 감싼다. 그렇게 우리에게 스며든다. 바다처럼 광대무변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Vladimir Jankelevitch)



올맨 브러더즈 밴드(Allman Brothers Band)의 음악이 다가온다. 기타가 흐느낀다. 아니다. 이들의 기타에 동사 ‘흐느끼다’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울부짖는다. ‘기타―토네이도’가 몰아친다. 평원을 가로질러 다가와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기타. 피부에 닿자마자 산(酸)처럼 쓰라리게 파고드는, 불의 혀처럼 통증을 일으키는 잔인한 기타. 관자놀이를 통과하고 창문을 넘어가 창공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선회하는 알바트로스 기타. 난파한 선박에게 신호를 보내는 검은 밤의 등대 불빛처럼 우회를 모르고 육박하다가 화르르 타오르는 기타. 목을 움켜쥐고 호흡을 가로막는 무뢰한의 악력 같은 기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기타.

Allman Brothers Band

Allman Brothers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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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던 록이라는 명칭에는 공간이 내포되어 있다. 남쪽의 록이라고 직역하면 이해가 쉽다. 미국 남부라는 지리적 위치가 이 음악의 특성을 이해하는 과정에 필요하다. 서던 록 밴드들은 미국 남부 출신이라는 요소를 공유한다. 텍사스, 루지애나, 미시시피, 카우보이, 청바지, 수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들이 남성적이다 못해 심지어 마초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느껴도 또한 틀리지 않다. 극소수를 제외(앞에서 말한 올맨 브라더즈 밴드에는 흑인 드러머가 있다)하고 백인 남자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흔하고, 트리플 기타에 올갠이나 바이올린 심지어 하모니카까지 편제되기도 한다. 록을 기반으로 하여 컨트리, 블루스, 재즈, 하드 록 등등의 다른 음악 요소를 혼합하는 서던 록의 음악적 특성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알 만한 서던 록 밴드들. 신세대 서던 록 밴드인 더 블랙 크로우즈(The Black Crowes). 프로그레시브 장르와 교섭한 드라이브 바이 트럭커즈(Drive-By Truckers). 여성 리드 보컬이라는 특이점을 앞세운 모던 서던 록 밴드 앨러바마 쉐잌스(Alabama Shakes). 서던 록의 서사시라고 불릴 만한 히트곡(아웃로즈의 <(Ghost) Riders In The Sky>나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 버드(Free Bird)>)으로 유명한 무법자들(Outlaws). 선글래스와 긴 수염으로 유명한 텍사스 출신의 서던 록 트리오 지지 탑(ZZ Top). 컨트리 음악 색채가 강하고 슬라이드 기타 연주로 알려진 마샬 터커 밴드(The Marshall Tucker Band). 보수 우익적 정치 성향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컨트리 장르에 근접한 음악을 선보이는 찰리 다니엘스 밴드(The Charlie Daniels Band). 1980년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였고 밴드명으로 권총 모델을 사용한, 팝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38 스페셜(38 Special). 강력한 블루스와 재즈를 결합시킨 라이브 연주로 시대를 압도한 올맨 브라더즈 밴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서던 록 최고의 명곡이라 지목되는 히트 싱글을 지닌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이밖에도, 서던 록의 영역을 확장하면, 1970년대를 풍미한 대중적인 밴드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나 ‘독수리들’(Eagles)도 포함될 것이다. 정치적 색채를 제거하고 남부, 백인, 블루스 같은 요소들로 범주를 단순하게 설정할 경우 램 잼(Ram Jam), 킹 오브 레온(Kings Of Leon), 블랙풋(Blackfoot),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같은 밴드들도 호명할 수 있을 듯하다. (대중음악 그 중에서 록 음악의 경우, 장르 구별을 명확하게 하기가 힘들다. 개념적 정의가 실상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프로그레시브’라는 수식어는 1970년대 유럽의 아트 락에서 사용된 개념이지만 지금은 메탈 장르에 주로 사용하고,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서도 수식어로 사용하여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같은 용어가 유통 중이다.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나 이박사의 하드 코어 <오방(O-Bang)> 같은, 테크노 뽕짝이라 불리는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트롯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ZZ Top

ZZ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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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로즈의 <라이더즈 인 더 스카이>는 서던 록의 입문으로 적당하다. 남부의 카우보이가 떠오른다. 서부극이 펼쳐지는 듯하다. 보컬이 전면에 나서고, 말이 달려오는 것 같은 리듬 뒤에 숨어 있던 기타가 나타난다. 날개를 펼친 천둥새(thunderbird)처럼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서던 록의 전형적 특성이 확인된다. 강력한 기타 사운드의 무한 질주가 기관총을 달군다. 총열이 붉어지고, 우리의 가슴도 뜨거워진다. <데블즈 로드(Devils Road)>의 하드 록에 가까운 경쾌한 기타가 지나가고, 긴장한 나의 품 안으로 파고드는 <푸른 풀과 높은 물결(Green Grass And High Tides)> 라이브 클립(1978년 10월 11일, 캐피털 극장). 이 음악은 나를 오랫동안 데울 것이고, 나를 긴 피로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사용하기 싫어하는 단어이지만, ‘처절’한 기타 세 대가 쟁투를 벌인다. ‘운다’로는 부족하다. 절규 같은 명사는 슬픔의 강도를 쉽게 휘발시킨다. 파열 직전까지 몰고 가지만 결코 듣는 사람을 분쇄하지 않는 기타. 23분 후에 나는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흐물흐물해질 것이다. 해질 것이다.


지지 탑의 음악은 즐겁다. 1980년대 들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초창기의 짙었던 블루스 향기가 옅어지기는 하지만, 1969년도에 텍사스 휴스턴에서 결성된 48년 경력의 지지 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웃음을 유발하는 뮤직 비디오(그들의 히트곡 <다리(Legs)>, <벨크로 플라이(Velcro Fly)>, <비바 라스 베이거스(Viva Las Vegas)> 같은 싱글), 수염을 어깨 뒤로 넘기면서 라이브 연주하는 모습…… 개성 강한 이 밴드의 음악은 복잡하지 않다. 세 명의 멤버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대곡(大曲)이 드문 이유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밴드의 리더 빌리 기븐스(Billy Gibbons)의 기타가 주도하는 이들의 음악이 보편적인 서던 록의 특성에 팝-록 요소를 가미(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춤추기 좋은 흥겨운 서던 록으로 발전한 양상을 규범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1975년 앨범 <<팬댕고(Fandango)>>에 실려 있는 <블루 진 블루스(Blue Jean Blues)>는 그들이 블루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서던 록 밴드임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초기에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컨트리 음악이 아니라 전통적인 블루스 사운드를 토대로 실험적인 서던 록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베이스 연주자 더스티 힐(Dusty Hill)이 노래하는 <터쉬(Tush)>가 끝나고 있다.


Lynyrd Skynyrd

Lynyrd Skyny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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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플로리다의 잭슨빌(Jacksonville)에서 결성되어 1973년 첫 앨범 <<레너드 스키너드로 발음되는(Pronounced 'L?h-'nerd 'Skin-'nerd)>>을 내고 단번에 서던 록의 정상에 오른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1977년 비행기 사고로 리드 보컬 로니 밴 잰트(Ronnie Van Zant)가 사망하여 허무하게 음악을 그만둔 레너드 스키너드. (1987년에 재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화요일이 지나갔네(Tuesday's Gone)>의 피아노와 기타의 협주를 통과한다. 남군(南軍)의 깃발을 내세우고 백인 냄새 짙은 음악을 펼쳐놓지만, 이들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힘과 서정성은 우리를 아련한 그리움으로 데려간다. <심플 맨(Simple Man)>을 비 내리는 한라산을 넘어가면서 들은 적이 있다. 일행 모두 이야기를 그치고 노래에 심취했다. 머리가 하얀, 모임의 최고 연장자이던 시인이, 담배를 피워 물더니 말했다. 참 슬프다, 슬프다. 감정을 전복하는 어떤 아름다움이 빗방울에 젖고 있었다. 때로 시적인 순간은, 황홀한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다가와서 몸과 마음을 찌른 후, 도마뱀처럼 달아나버린다. ‘아들아, 걱정하지 말고, 네 마음을 따라가보렴, 너는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될 거야, 선하게 살아라,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룰 거야, 저 높은 하늘의 신이 널 지켜주실 거야, 아들아.’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해주는 따스한 말씀 사이에서 번뜩이는 기타 선율. 서던 록의 서사시 중 하나인 명곡, <자유로운 새(Free Bird)>의 기타가 폭발하려고 한다. 전율, 전율 다시 전율한다. 사랑하는 여인 곁을 새처럼 떠나가야 하는 남자의 아픈 마음이 기타의, 온몸의 날갯짓으로 표현된 듯하다. 비상한다. 5분이 넘는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이 빛나는 후주를 언어는 번역해낼 수가 없다. 시가 무기력해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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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버드>에 버금가는 서던 록 서사시가 남아 있다. 올맨 브라더즈 밴드의 라이브 앨범 <<필모어 이스트에서(At Fillmore East)>>를 꺼낸다(1971년 3월 12~13 양일간 뉴욕 필모어 이스트에서 공연됨). 블루스, 재즈, 컨트리 음악이 혼합된 그들의 음악. 서던 록으로 규정되는 것을 그들은 거부하지만,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남부 프로그레시브 락이라고 인식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서던 록의 정상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엘리자베쓰 리드를 추모하며(In Memory Of Elizabeth Reed)>, 13분. 연주곡이 시작되었다. 기타와 올갠이 나란히 움직인다. 우리는 기타의 바다에 부유한다. 기타 선율의 파도에 올라탔다. 기타의 바람이 돛을 부풀린다. 전진한다. 그들의 말이 맞다. <태형 기둥(Whipping Post)> 23분. 이 음악은 프로그레시브이다. 하드 코어 재즈(hard core jazz)이다. 듀언 올맨(Duane Allman, 71년에 사망한다)과 디키 베츠(Dickey Betts)의 기타, 그렉 올맨(Gregg Allman, 올해 죽었다)의 올갠과 보컬 그리고 두 대의 드럼이 끓기 시작한다. 넘치면서 용암이 된다. 어떻게 이 시대에 이런 음악이, 아니 그 모든 음악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기타의 폭풍이 다가온다. 이것은 기타의 쓰나미이다. 이곳에는 오로지 기타, 기타 그리고 기타뿐이다. 시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아름다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음악이 없다면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죽을 것이다.”(파스칼 키냐르, <<부테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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