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행정 사법부에 갇힌 재계] 재계 "아군이 없다" 한숨소리만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여당과 행정부가 국내 주요 그룹사들을 '적폐'라 부르며 '재벌 해체'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 역시 삼성 전현직 경영진들의 뇌물공여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데 이어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신의성실의원칙(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으며 재계 전체를 코너에 몰아붙이고 있다.
사상 초유의 불확실성 속에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하반기 내년 경영계획을 짜야 하는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1일 "여당과 행정부는 누르고 사법부는 쥐어짜고, 이게 우리 재계가 처한 현실"이라며 "명확하지 않은 법과 제도속에서 사법부가 기업들에 불리한 판결만 내리다 보니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계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특히 여당과 행정부에 이어 최근 사법부까지 반기업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 재판에선 개인적인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공소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유죄를 선고했고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선 3분기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고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지난달 25일 전현직 삼성 경영진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명확한 증거 없이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정황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31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선 현 경영상황이 어렵다는 사측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법원이 신의칙 적용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없다 보니 일단 소송부터 하고 보자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계는 이 같은 일련의 사법부 판단이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결과를 보면서 그릇을 깨고 있다는 생각에 내내 우울했다"면서 "상여금은 말 그대로 보너스이고 당시 회사 경영이 좋았다 해도 현재 경영이 어려워졌는데도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학계는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해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른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기업 경영에 있어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것인데 이처럼 오락가락 사법부 판단이 엇갈리면 기업 입장에선 준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는 "최저 임금 인상, 통상임금 소송 등 인건비 자체가 더 많이 들게 되면 기업들 중 그만한 인건비를 감당해 생산성을 내지 못하는 직무들을 전부 외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인데 사법부까지 모호한 판단을 내리고 있어 향후 한국 전체가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미 국내 제조업의 투자가 해외에 집중되고, 다국적 기업들도 한국 투자를 꺼리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 사회로 가고 있는 만큼 과거 집단중심의 근로기준법에서 개인별 근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해) 법원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겠지만 최근 나만 챙기고 잘살면 된다는 현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산업계의 지속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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