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文정부서 벌어지는 '을과 을의 싸움'
[세종=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일하는 사람이라면 가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외친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문 정부 경제정책인 '제이(J)노믹스'의 한 축인 '소득주도 성장'의 주요 열쇠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을(乙)인 아르바이트생과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삶을 위해서는 꼭 달성되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소득은 또 다른 경제주체들에게는 비용이 된다. 바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을로 꼽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점점 벌어지는 격차로 힘겨워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수출로 연일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 달리, 지난 20년새 중소기업의 임금 총액은 대기업의 77%에서 63% 수준까지 감소했다. 소상공인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 수는 90만9202명으로 2004년(96만4931명) 이후 12년만의 최대 수준이다. 전년도와 비교하면 15%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중소기업ㆍ소상공인 업계의 주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33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 1만원이 2020년까지 실현될 경우 55%가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할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중소기업보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높은 소상공인들의 위기감이 더 크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최근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경제적 약자인 중소상공인과 근로자 사이를 편가르는 정책"이라며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저임금 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재벌의 독점적 지위 때문이라는데, 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소상공인들이 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아르바이트생 노조인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에 "최저임금 1만원은 의지의 문제"라며 압박을 가했고, 알바노조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퍼포먼스를 벌였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가운데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공전하고 있다. 심의 기한을 6일 남겨둔 지난 10일 열린 9차 회의마저도 중소기업ㆍ소상공인 측 위원들의 보이콧으로 파행으로 끝났다. 다음 회의에서는 복귀할 뜻을 밝혔지만,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막판까지 이렇다 할 합의가 도출되기 힘들어 보인다. 결국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될 전망이다.
문 정부 내내 이같은 '을 대 을' 대결구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최저임금(6470원) 수준을 감안하면, 3년간 매년 평균 15.7%가 상승한다. 지난 5년간의 최저임금 인상률 평균(7.5%)의 두 배에 달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3년간 두 자릿수의 임금인상률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당장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는 노동계는 15%의 상승률도 만족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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