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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우기/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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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비는 아무에게나 슬픔을 나눠 준다 우기에는 네 슬픔이 옳았다 오래오래 젖다가 수채화 같은 슬픔이 온다는 말, 몹쓸 흉터에서 잎사귀 같은 불행이 생겨난다는 말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사과나무 가지 끝 풋사과 옆이 무너졌다 나도 저렇게 슬픈 데를 씻다가 무너졌다 슬픔이 없다면 슬픈 게 여럿이던 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없다면 줄곧 믿어 왔던 이 많은 책들과 수없이 눌렀던 어두운 버튼들, 맘에 내내 서 있던 사람 서랍 속의 흉터들 모두 혼자일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저렇게 흠뻑 슬플 것이다 죽을 것처럼 들고 온 것들, 저렇게 말할 수 없어서 짧게 말할 수 없어서 슬픔은 머리카락이 길고 형용사처럼 영롱하다 우기에는 슬픈 게 슬픈 걸 찾아낸다 슬픔을 그만둘 수 없는 자들이 맹렬하게 기쁨을 잃는다 점 하나 없는 슬픔 언제 그칠까? 주인 곁을 개처럼 지키고 있다

 
[오후 한 詩] 우기/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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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다. 우기가 되면 이상하게도 좀 슬프다. 좀 슬퍼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면 좀 슬퍼 보이는 애기사과나무가 멀찍이 서 있고 그 아래 녹슨 어린이용 자전거가 약간 더 슬픈 자세로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앞을 우산 쓴 사람들이 지나간다. 가끔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도 지나간다. 우산을 썼건 쓰지 않았건 사람들은 빗속을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엔 금세 빗방울들이 들어서 흐느끼고 있다. 내 "맘에 내내 서 있던 사람"이 저 빗속에 있다. 이제 "슬픔을 그만둘 수 없"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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