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Economia] 뇌과학·철학의 만남 ‘사람다움’ 의미 찾기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공상 과학영화의 지속적인 인기, 스마트폰 등 IT제품의 발달, 알파고 등장과 맞물린 4차 산업혁명까지 인공지능(AI)시대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한다. 그래서 최근 서점가는 뇌과학에 관심이 많다. 뇌과학자들이 인문강의나 토크쇼에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간 인문학을 통해 사회문제의 답을 구하려 했다면, 최근에는 뇌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영역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중이 뇌과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불확실한 사회에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개그쇼보다 정치판이 더 주목받고, 영화보다 현실이 더욱 드라마틱해 보이는 최근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파악하며 실제적으로 해답을 얻길 원한다.
과학은 이곳저곳 산재한 자연 원리를 연결하고 분류해 나름의 체계로 정의하는 인간 활동을 통칭한다. 뇌과학도 명확한 인과관계를 통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 세상의 복잡다단한 행동양식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최근 서점가에 쏟아지는 뇌과학 책들은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에 독자는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실제 뇌과학은 불치병과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치료법을 개발할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까지도 연구한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해 인간과 기기의 의사소통 분야까지 확대됐다.
신간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는 뇌과학에 대한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억'을 전면에 걸쳐 다룬다. 뇌과학자와 철학자의 합작품으로 기억에 대한 기존 인식을 새롭게 정의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출발하는 철학과 미시적 관점의 뇌과학은 중간에서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두 저자는 한 동료로부터 "물고기와 새가 서로 좋아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같이 살 보금자리를 어디에 마련하지?"라는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뇌과학자와 철학자의 협업을 비유한 것이다.
애초에 철학은 인간의 정신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려 애썼고, 뇌과학은 그 연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특정 현상들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뇌과학에 관한 이제까지의 문헌들은 파편 수준에 머물렀다. 수많은 개별 성과들을 정리해나갔지만, 전체를 숙고하는 포괄적 관점은 여전히 부재했다. 반대로 철학은 의학과 실험적 뇌 연구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부유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 두 학문은 그러나 신경과학이 뇌 연구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부터 극적으로 만난다. 이들은 '기억'을 연구한다는 공통분모에서 접점을 찾았다. 방향은 달랐지만, 도달한 곳은 하나였다. 서로 공유할 학문적 보금자리를 꾸미기 시작했다. 책은 기억을 통한 미래설계, 꿈과 수면으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법, 상상과 거짓기억이 미치는 영향, 기억과 망각의 상관관계, 집단기억의 능력까지 차분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기억의 미래도 함께 전망한다. 기억은 기술의 발달로 보조장치가 발달하면서 그 부담이 줄었다. 기억의 보존은 외부로 이전됐다. 이제 기억의 가치는 다른 분야를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지식의 수집보다 해석 능력이 더 중요해지면서 사실을 모아놓은 장소로서의 기억이 아니라 해석하는 능력으로서의 기억으로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 이제 사실들을 재료 삼아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화두인 '융합'과 '연결'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역사부터 지식 축적에 근거한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발달이 이것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두 저자는 뇌 기능을 단서로 붙들고 '사람다움'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한나 모니어·마르틴 게스만 지음/전대호 옮김/문예출판사/1만6000원>
문화부 기자 ksy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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