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초합리주의/박상수
생각으로는 뭔들 못 해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한 손으로 내 목을 조를 수도 있을 것 같아, 나 말고 한 명 더 데려갈 수 있다면 그건 누구일까 로얄 코펜하겐 찻잔에서 입술을 떼며 팀장 네가 말했지
팀이 없어져도 결코 끝은 아닌 거야 내가 너를 그냥 버리겠니
불량 섹터가 난 걸까 커피가 다 식도록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지 반년 전부터 나간다고 했더니 참으라고, 세 번이나 잡아끌어서 여기까지 왔어 이틀 전에도 네 주말농장에 다녀오면서 난 울었지 내가 왜 네 밭에서 너랑 감자를 캐야 하니…… 그사이에 넌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었구나 혼자 거기 가는 걸 오늘 말해 주면 꽃받침하고 너를 봐주어야 하니
너덜너덜해지도록 우린 같이했어, 알아? 내 통화 기록 1등이 너야 엄마보다 더 많이 통화한 사람…… 왜 몰랐을까 거지 같은 걸 손에 쥔 인간들이 그걸 안 놓치려고 밑의 사람은 더 거지같이 만들어 버린다는 걸, 네가 만든 쓰레기 풀장에서 자맥질을 하며 난 너를 사랑하려고 했지 너를 미워하면 스물네 시간 강렬하게 너만 생각하게 될까 봐, 차라리 물안경을 쓰고 너를 사랑하려고 했다 이게 뭐라고
흐흐흐흐흐
깨진 피리 불 듯 소리를 내니까 네가 움찔했지 얼굴을 들어 물었어 마지막 회의 때, 팀장 네가 반대해서 내가 안 된 거라면서요? 자개 패턴 안경 뒤 네 눈이 크게 흔들렸어 그래, 잘도 알고 있었구나, 흐흐흐, 딥 다크한 노을이여, 나도 위대한 거절이라는 걸 해 보고 싶었는데…… 쓰레기 풀장 바깥으로 기어 나가면 더 못 가지고 노니까, 비늘을 자르고 붕어 밥을 뺏어 버린 거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네가 지껄였지
널 더 강하게 만들려고 그랬어!
저렴해, 너무 저렴하다, 그건 그냥 버린 거잖아…… 잿빛 먼지로 태어나서 반전도 없이 그냥 미끄러지면 어디로 갈까 딱정벌레 등딱지들이 사방에서 쏟아졌어 장작불 튀는 소리, 이렇게 구운 가루로 잊을 수 없는 음영 아이 메이크업을 하자 벌레를 없애는 데 낫과 망치는 필요 없겠지 반은 웃고 반은 울면서 나는 말했어
안 됐네요 날 더 강하게 못 만들어서
기뻐요 내가 이것 밖에 안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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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왜 이 세계는 자꾸 비참해지는가. 도대체 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억압과 폭력의 근원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가면 갈수록 "거지 같은 걸 손에 쥔 인간들이 그걸 안 놓치려고 밑의 사람은 더 거지같이 만들어 버"리는 세상이다. 이를 두고 단지 개인의 품성이나 욕망을 탓할 것인가. 혹은 그저 시스템이 충분히 완비되지 않았거나, 억압의 구조를 내면화한 바라고 말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 것인가. 자본의 지배력은 어쩌면 합리를 가장한 '초합리'에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폐지한 왕이나 신과 같다. 모순은 갱신의 대상이 아니라 애초부터 해결 불가능한 심연이다. 어찌해야겠는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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