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사진작가 Y선생님과 점심약속을 하면 뭘 먹을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는 집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북엇국입니다. 뭔가 좀 다른 것을 드셔보길 권해도, 소문난 집에 한번 가보시자 청해도 번번이 고개를 저으십니다. 못 들은 척, 그리로 걸어가십니다.
오늘도 기사식당입니다. 질리거나 물리실 법도 한데, 다른 곳으론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십니다. "이 이상 좋은 게 어디 있남." 그 말씀이 마치 어떤 수입 브랜드의 슬로건처럼 들립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This is enough)."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느냐는 뜻이지요.
기사식당 식탁은 화려하진 않아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밥상을 닮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한때, 그곳을 한없이 고마워했습니다. 직장을 나와서, 혼자 일을 하던 1993년 무렵입니다. 요즘 문자로 '혼밥'이 잦던 시절이지요. 지금이야 흔한 일입니다만, 그때만 해도 '혼자 밥 먹기'는 퍽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연민스럽게 느껴지고, 남들의 시선까지 은근히 신경 쓰이곤 했지요. 그 즈음, 기사식당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선 혼자 밥을 먹고 있어도, 아무도 딱한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닌 손님들이 드물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겸상을 하는 것조차 자연스러웠습니다.
그것이 하도 반가워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찾았다, 나를 위한 식당.' 덕분에, 주변사람들에게 농담처럼 떠벌이던 '사직의 변(辯)'까지 헛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나온 이유요? 회사택시 그만하고, 개인택시를 하고 싶어서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때 제 글쓰기를 곧잘 '생각의 택시운전'으로 표현하곤 했지요.
노동과 휴식을 제 마음대로 요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개인택시 기사(프리랜서)가 되었지요. '사납금'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교대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손님이 없으면 일찍 들어가고, 주말이면 '쉬는 차' 푯말을 꽂고 쉬었습니다. '제가 곧 회사'였으니까요.
말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제 이름이 찍힌 택시는 비교적 잘 '굴러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떤 기사식당의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돈가스나 순두부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돈가스는 아마 나라 안에서도 제일 컸을 것입니다. 아무리 배고픈 청춘이라도 만족시킬 만한 크기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엔 참 알 수 없는 일도 많더군요. 얼마 전에 그 거릴 지나다, 그 식당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됐습니다. 노란 유니폼의, 제 동업자들 사랑이나 받던 식당이! 고단한 '혼자'들의 식당이, 관광지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더군요. 가족과 연인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로니컬하지 않습니까. 한때 '혼밥'천국이던 식당이, 이제 혼자 주문을 하면 오히려 눈치가 보일 것 같습니다. 아니, 한 그릇은 곤란하다고 주인이 손사래를 칠지도 모릅니다. 혼자를 위한 고기집도 생기고, 혼자를 위한 중국요리집도 생기고 있는 시절에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사식당들은 여전히 제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한 사람'을 위해 셔터를 내리지 않습니다. 늦은 밤까지 불을 끄지 못합니다. 택시나 화물차를 몰고 오는 사람만 기다리는 것도 아닐 테지요. 온종일 일이 꼬여서 기진맥진한 영업사원의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집엔 도보순례중인 젊은 나그네가 찾아들지도 모릅니다. 또 어느 집에선, 이리저리 식당을 찾아 헤매다, 늦은 저녁을 먹게 된 연인들의 감탄이 터져 나올 수도 있지요. "우리 집 밥 같아요." 어쩌면 밥을 먹다 말고, 카메라를 꺼낼 것입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 어느 누가 운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고 긴 인생행로의 '드라이버'. 이력서는 그 운행일지 아니던가요? '이력(履歷)', 신발을 끌고 다닌 기록과 그 길의 역사. 말할 것도 없이, 혼자서 가는 먼 길입니다. 그 길들 위에 무수한 기사식당들이 있습니다.
거기엔 어머니나 아버지가, 낯선 아저씨 아주머니의 차림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콩나물 국밥을 먹고 있는 우리 곁에 와 서성거리며, 자꾸 말을 거는 사람입니다. "많이 늦으셨네요."… "어디서 오셨수?"… "우리 막내도 서울 있는데."…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날이 참 덥지요?"… "오이냉국 좀 더 드릴까?"
비유컨대, 기사식당은 현대판 주막입니다. 지금 제가 앉아있는 이곳이야말로, 오랜 옛날부터 기사식당들의 거리였지요. 말과 마부들이 쉬던 자리, 관원들과 여행자들의 숙소가 있던 동네였습니다. '역삼동(驛三洞)'. 말죽거리, 아랫방아다리, 역촌 이 세 마을이 모인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지요.
저는 지금 조선 주막에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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