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둔화 직면, 우리경제엔 치명타
약속절벽·소비절벽·고용절벽 3대 절벽에 시름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대학교 친구들 모임 회비가 5만원입니다. 예년에는 그 중 성공한 애들이 밥값을 냈는데 작년에는 회비를 걷는다는 거예요. 회비 5만원에 세종시에서 서울까지 왕복기차비와 택시비 더하면 10만원이 훌쩍 넘습니다. 2~3시간 친구들 얼굴보고 다시 밤 기차로 세종시로 내려가야는데 그 돈 쓰면서 모임에 가겠습니까?"
세종시 한 정부부처 과장급 인사는 지난 연말 송년모임을 아예 포기했다. 세종시 이전 이후에도 가끔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꼬박꼬박 회비를 내면서 경제적 부담이 커진 탓이다.
우선 더치페이(각자내기)의 일상화다. 공무원과 기자는 물론, 청탁금지법 대상자가 아닌 기업인들이 포함된 식사자리에서도 각자 카드로 밥값을 계산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 법 시행 직후 난색을 표하던 식당 주인도 "청탁금지법 대상자"라고 말하면 흔쾌히 카드를 받아준다.
특혜가 사라진 점도 청탁금지법의 대표적인 효과다. 병원에선 그동안 지인들로부터 환자들의 진료예약과 수술날짜 등의 순서를 앞당겨 달라는 '민원'이 부지기수였지만, 법 시행 이후 병원 곳곳에 '청탁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으면서 특혜성 민원이 사라졌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진료순서 변경은 다른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된 만큼 민원을 넣는 쪽이나 받는쪽 모두 부담스러웠는데 청탁금지법 이후 가장 긍정적 변화"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논문심사 풍경이 바뀌었다. 과거 논문심사에는 학생과 지도교수가 심사에 참여하는 교수에서 식사를 접대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이해관계 충돌이라는 법안 취지에 맞게 심사교수가 밥값까지 계산하고 있다.
실제 국회에선 기업의 대관담당자가 사라졌다. 공직자들과 교원, 언론 등 400만명에 달하는 청탁금지법 대상자가 약속을 기피하면서다. '약속절벽'이 내수시장에서 '소비절벽'으로 이어지면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경제 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2월 94.2로 지난달보다 1.6포인트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7년8개월 만의 최저치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외식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관련 종사자들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고용절벽'까지 나타났다. 외식업 일자리는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달 연속으로 전년동기대비 3만개가 줄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고고병원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계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 우려로 금융권이 담보대출을 압박하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소비절벽'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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