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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정밀지도데이터와 스크린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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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정말 어렵다. 국내에선 국가 리더쉽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고, 대외로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실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내우외환 형국이라 한 때 국록을 먹은 사람으로서 가슴이 답답하다.

특히 트럼프 당선자가 쏟아 낸 보호무역정책은 앞으로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면밀한 사전 대응노력이 절실하다. 작금의 이러한 어려움에 처하니 박근혜정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통상교섭본부를 폐지해 버린 것은 크게 아쉽다.
이제라도 통상대응 조직과 인력을 시급히 재정비하고, 분야별 대비책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한데,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에서 얼마나 가능할지 걱정이다. 먼 바다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해변가에서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냉정한 대처가 필요하다. 위기국면에서 당황해 허둥대면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자칫하면 중대한 국익을 훼손할 뿐이다. 최근 구글에 상세지도데이터의 반출 허가를 앞두고 정부가 냉정한 대처를 하고 있는지 의심이 된다. 지도데이터라도 반출을 허가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압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오판이고 시기로도 맞지 않은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국가를 대표해 수많은 협상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내 경험상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철저하게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구글 같은 거대기업의 목소리가 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런 USTR도 수많은 어젠다 중에서 정치적으로 우선순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자동차·철강 등 전통산업지역(rust belt)의 소외된 백인들을 기반으로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 연안지역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극렬 반트럼프 진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트럼프 측이 실리콘밸리 관심 이슈에 대해 전혀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극도로 혼란스러운 미국 정국 상황에서 곧 그만둘 현행 USTR 팀이 구글 이슈를 지금 심각하게 들고 다닐 상황도 아니다.

설혹 우리가 자발적으로 지도반출허용을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높은 평가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관심 자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헛수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산업적으로 보면 지도데이터는 과거 오랜 기간 한미 간 통상현안이었던 국산영화의무상영제(스크린쿼터제)를 떠올리게 한다. 헐리우드의 강력한 요청으로 USTR은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요구하였고,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의 지렛대로 크게 활용됐다. 오늘날 우리 영화 등 한류문화콘텐츠가 이 정도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 데에는 관련업계가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준 공직자들의 노고도 평가돼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제4차 산업혁명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구글 등 IT 공룡기업들이 마치 옛날 헐리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집어삼킬 태세다. 이러한 새로운 물결에서 지도데이터는 그 핵심플랫폼 중의 하나이다. 포켓몬고 광풍이나 자율주행자동차 시대에 지도에 대한 접근권은 필수적이다.

미국은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스크린쿼터처럼 이 문제를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에게 시간을 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편의 미래 핵심 관심 사안을 단순 생색용으로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것은 협상전략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초야에 묻힌지 오랜 사람이 귀한 지면(紙面)을 어지럽힌 것은 지도데이터 반출문제 논의를 보면서 목전에 닥친 보호무역주의시대에 우리가 허둥지둥하고 전략적으로 정밀 대응하는 데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서다. 트럼프 정권의 통상정책이 구체화되고 한미 FTA 재협상 등 본격적 한미 통상마찰이 현재화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 부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김영모 경제규제행정컨설팅(ERA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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